공개매수 통한 적대적 M&A, 한국선 안 통한다?

  • 입력 2008년 4월 26일 02시 58분


《최근 샘표식품에 대한 우리투자증권 사모펀드 마르스1호의 공개매수가 실패로 돌아갔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는 호재로 샘표식품의 주가가 크게 올라 주주로서는 번거롭게 공개매수에 응할 이유가 없었다. 제일화재의 최대 주주에게 지분인수 제안서를 보낸 메리츠화재 역시 ‘백기사’로 나선 한화그룹과 지분 경쟁을 벌이려면 공개매수를 선택해야 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

2003년 이후 국내에서 이뤄진 총 4건의 ‘공개매수를 통한 적대적 M&A’는 모두 실패했다.

M&A 전문가들은 “국내에선 적대적 M&A에 대한 반감, ‘오너 중심’의 기업 소유구조 때문에 적대적 M&A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 메리츠화재, 남은 선택은 공개매수?

금융업계에서는 메리츠화재의 제일화재 인수가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마지막 선택은 공개매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메리츠화재는 25일 현재 제일화재의 지분을 11.5% 보유하고 있다. 반면 제일화재의 ‘백기사’로 나선 한화그룹은 계열사를 통해 신속히 제일화재 주식을 사 모아 메리츠화재가 보유한 지분과의 격차를 20% 가까이 벌렸다.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한화 계열사가 공시 이후 제일화재 지분을 5% 이상 더 확보해 총 우호지분이 35%에 이르는 만큼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말했다.

메리츠화재는 28일 이사회를 열고 제일화재 인수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대신증권 강승건 애널리스트는 “메리츠화재가 시가보다 훨씬 높은 주가로 공개매수에 나선다면 승산이 있지만 확보해야 하는 지분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제일화재의 주가는 25일 하한가로 급락하며 1만6600원에 마감됐다.

○ “‘적대적 공개매수’는 대부분 실패”

국내에서 이뤄진 적대적 공개매수는 대부분 M&A를 이슈로 주가가 크게 오르거나 공시의무를 어기는 이유 등으로 실패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4년 KCC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공개매수.

2003년 8월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경영권이 불안해진 틈을 타 외국인투자가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급격히 늘렸다. 이에 KCC는 ‘백기사’로 나섰다가 돌연 현대엘리베이터 인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KCC 소액주주들의 KCC 경영진에 대한 배임 소송, 지분인수 과정에서의 허위 공시 등으로 강제매각 명령을 받았다.

같은 해 동성화학도 코스닥 기업인 에스텍에 공개매수를 하며 적대적 인수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적대적 M&A를 빌미로 에스텍 주가가 급등해 주주들이 공개매수에 응할 인센티브가 적었다.

우리투자증권 이훈 애널리스트는 “적대적 M&A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주주들이 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기대해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오너 있는 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 쉽지 않아”

적대적 M&A가 실패하는 배경에는 ‘기업 사냥꾼’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깔려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06년 국내에서 이뤄진 M&A 중 적대적 M&A의 비중은 2.1%로 글로벌 마켓의 9.7%보다 현격히 낮다.

지난해 서울증권 등을 인수한 유진그룹의 한 관계자는 “M&A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지분이 분산된 선진국의 기업과 달리 상당한 지분을 가진 오너가 대부분이다. 기업들은 적대적 M&A가 발생하면 오너가 나서서 우호세력 등을 적극 동원하며 적대적 M&A에 강력하게 대응한다.

이태훈 맥스창업투자 부사장은 “한국은 사법부나 금융감독 당국도 공격자에 대해서 수비 측에 비해 인수 목적, 인수 자금의 성격을 깐깐하게 따지는 경향이 있어 공격자가 불리하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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