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선 코오롱 노사, 두발 다가온 행복공장

  • 입력 2008년 4월 12일 02시 50분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가운데)이 11일 구미공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족구를 즐기고 있다. 코오롱 창립 51주년을 맞아 냉장고 100대를 트럭에 싣고 구미공장을 찾은 이 회장은 “구미공장을 ‘행복 공장’으로 만들어 그룹의 상징적인 일터로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사진 제공 코오롱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가운데)이 11일 구미공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족구를 즐기고 있다. 코오롱 창립 51주년을 맞아 냉장고 100대를 트럭에 싣고 구미공장을 찾은 이 회장은 “구미공장을 ‘행복 공장’으로 만들어 그룹의 상징적인 일터로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사진 제공 코오롱
코오롱 창립 51주년 구미공장서 열린 ‘상생의 한마당’

《11일 오전 11시 20분, 경북 구미시 공단동 ㈜코오롱 구미공장. 냉장고 6대와 페인트를 가득 실은 1t 트럭이 공장으로 들어왔다. 이어 냉장고 100대와 도넛 2000개, 비타민제 1500개를 실은 대형 트럭이 뒤따랐다. 갑자기 꽹과리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2열로 늘어선 공장 직원 200여 명도 “와∼” 함성을 질렀다. “행복” “감사합니다”라는 함성도 들린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그는 1t 트럭을 손수 운전하면서 공장 직원들에게 줄 선물을 날랐다. 이 회장은 환호하는 직원들에게 손을 흔든 뒤 곧바로 수출품 창고 외벽에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코오롱이 12일로 창립 51주년을 맞는다. 이 회장을 포함한 주요 임직원은 경기도 과천의 코오롱 본사가 아니라 구미공장에서 창립 행사를 가졌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구미공장의 창립행사는 ‘코오롱인’들에게 그만큼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 과거…심각한 노사 대립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코오롱 임원이 구미공장을 방문하는 모습은 상상조차 힘들었다. 구미공장은 코오롱에서 노조가 있는 유일한 사업장으로 거의 매년 강경 파업을 벌여 왔다.

특히 한국 화섬(化纖)업계 전반이 위기에 빠진 2003, 2004년 코오롱 노사(勞使)는 극심한 대결 양상을 보였다.

당시 회사는 수익성이 낮은 섬유부문의 일부 사업을 철수하기로 하고 임원 25% 감축, 조직 32% 축소안을 내놓았다. 이어 희망 퇴직을 받으면서 근로자 78명에 대해선 정리해고도 실시했다.

구미공장 노조는 2005년 2월 정리해고 반대 투쟁위원회를 만들어 구미공장 정문을 점거하고 ‘코오롱상품’ 불매 운동을 벌였다. 2006년 3월에는 이 회장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 대형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와 경비원을 폭행하기도 했다.

○ 현재…서로 한 발씩 양보

극단적인 노사 대치는 김홍열 코오롱 타이어코드 생산현장 반장이 10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노조원들은 ‘노사화합’을 외치는 김 위원장을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새 인물을 한번 믿어 보자’는 신뢰도 함께 보냈다.

김 위원장은 상근 노조 간부를 9명에서 5명으로 줄였다. 구미공장의 주요 고객사엔 그동안의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회사 측에 대해선 ‘영구 무(無)분규 선언’을 했다.

회사는 노조의 움직임에 적극 화답했다. 경쟁력이 낮은 섬유 중심의 구미공장을 신수종(新樹種) 사업 생산기지로 육성하기로 한 것이다. 최근 구미공장에 첨단 소재, 고강도 유리섬유 복합관 등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의 생산라인을 설치했다. 노조와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김 위원장은 “2000년대 중반 강경 일변도의 파업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임금 삭감과 동료들의 퇴직이었다”며 “이제 많은 노조원은 파업을 통한 작은 이익보다 회사 경쟁력을 높여 더 큰 이익을 나누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미래…행복공장 만들기

이날 구미공장에선 작은 잔치가 벌어졌다. 공장 간부 30여 명은 이 회장과 함께 공장 외벽을 페인트칠 했다. 간부사원의 부인들은 전을 부쳤고, 농악대들은 신나게 흥을 돋웠다.

이 회장은 페인트칠을 마친 후 공장 직원들과 족구도 즐겼다. 노조위원장과는 막걸리로 ‘러브샷’을 했다.

이 회장은 “김천공장에 화재가 났을 때 구미공장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달려갔다”며 “가장 가슴 아프게 하던 구미공장이 이제는 뭉클한 감동을 준다”고 했다. 그는 “노사가 힘을 합쳐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노조가 최근 3년간 임금 동결을 한 만큼 회사도 좋은 성과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직원들도 신뢰를 보냈다.

김명덕 코오드 생산팀 반장은 “양보할 수 없는 게 임금 문제이지만 회사를 믿고 3년 동안 자발적으로 임금을 동결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옆에서 전을 부치던 한 아주머니도 거들었다. “제 남편이 올해로 구미공장에서 근무한 지 30년이 됩니다. 그동안 아이 3명을 대학까지 다 졸업시켰습니다. 회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남편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좋으니 회사가 우선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구미=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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