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일땐 과감히… 이런게 혁신적 사고”

  • 입력 2008년 4월 10일 02시 59분


“우생순 흥행 열에 아홉은 안될거라 말해

밀어붙일땐 과감히… 이런게 혁신적 사고”

KAIST 경영학도들 ‘경영 문외한’ 영화감독 강의에 흠뻑 빠지다

8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2동 KAIST ‘최종현 홀’. 경영학석사(MBA) 과정의 학생 200여 명이 ‘명사(名士) 초청 특강’을 듣기 위해 모였다.

하지만 전혀 명사 같지 않은 강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면바지에 남색 남방, 무스를 잔뜩 발라 헝클어뜨린 머리, 은반지로 만든 목걸이, 검은색 뿔테 안경….

그는 “경영이라는 것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고, 그냥 먹고살기 위해 열심히 뛸 뿐”이라며 “사실 오늘 여러분 앞에 서는 게 좀 두렵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1시간 반가량 그의 강의에 푹 빠졌다. 교재를 통해 배울 수 없는, 색다른 경영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소감이 많았다.

○ 영화감독, MBA 강단에 서다

이날 MBA 특강 강사는 ‘더 게임’ ‘아홉 살 인생’ ‘마요네즈’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윤인호 씨였다. 윤 감독은 ‘영화감독도 경영을 모르면 망한다’라는 주제로 이날 강단에 섰다. 그는 시나리오 등 영화 관련 강의는 많이 했지만 MBA 강의는 처음이라고 했다.

KAIST는 올해 봄 학기에 ‘경영학과 상관없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특강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식(韓食) 세계화에 나선 조태권 광주요 회장, 프랑스 파리에 남성복 단독 매장을 낸 우영미 사장, 미래상상연구소 홍사종 소장 등이 강의했다.

고위경영자과정 디렉터인 배보경 KAIST 교수는 “MBA 과정의 학생이라면 훌륭한 인재를 모방해 따라가는 추종자(follower)가 아니라 새롭게 생각하고 창조하는 개척자(innovator)가 되어야 한다”며 “우리 시대 개척자들의 강의를 통해 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 주고 싶다”고 말했다.

○ 영화 제작 속 경영학

윤 감독의 강의는 자신의 경험을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경영학과의 연결 고리를 조금씩 찾아갔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혼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1초를 찍든 2초를 찍든 스태프 100여 명이 함께 손발을 맞춰야 한다. 주연배우가 힘들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그날 영화는 못 찍는다. 감독은 배우를 통해 자신이 의도한 바를 표현한다. 감독이 배우와 혼연일체가 되다 보니 배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하하∼.”(조직 관리)

“스포츠신문에 나오는 배우들의 연봉은 다 거짓말이다. 어떤 신인은 영화 출연료로 1000만 원을 받지만 인터뷰 때 부풀려 말한다. 다음 영화에서 더 높은 출연료를 받기 위해서다. 반대 사례도 많다. 배우들은 벌써 ‘경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협상 전략)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이 400만 관객을 모을지 전혀 몰랐다. ‘안 망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개봉 직전까지 그랬다. 결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여니 ‘대박’이 터졌다. 기업 경영도 ‘안 보이는 것’을 믿고 한번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하지 않나.”(혁신적 사고)

○ 책에 없는 지식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테크노 MBA 1년차인 송치훈 씨는 “경영학 교재와 교수님들의 강의를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지식’을 얻었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를 믿고 사물을 새롭게 보라는 조언은 최고경영자(CEO)가 되새겨 볼 만하다”고 말했다.

같은 전공의 박고은 씨는 “‘배우의 마음을 읽고 자신의 의도를 이끌어 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는 부분에 특히 공감이 갔다”며 “직원들의 생산성이 낮아 어려움을 겪거나 인재 관리에 관심이 많은 CEO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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