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국유화’ 바람에 비상…투자금만 날리고 철수

  • 입력 2007년 2월 2일 03시 01분


《강원 정선군에 본사를 둔 자원개발업체 ㈜동원은 2002년 볼리비아에서 금광, 유전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회사 측은 “광구의 잠재가치가 6000억 원 규모로 예상된다”며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5년 이 나라에 좌파 정권이 들어선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볼리비아 정부는 관련 법령을 개정해 정부에 내야 하는 로열티를 3배가량으로 인상하는 등 외국기업에 적대적인 정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사업성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동원은 그해 유전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후에도 상황은 더 악화됐다.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해 천연가스 국유화 방침을 밝히면서 외국기업들의 숨통을 조여 갔다.》

마침내 이 회사는 ‘좌파 정권의 산업 국유화 문제’를 이유로 지난해 말 투자 금액도 회수하지 못한 채 금광 사업을 접고 말았다.

세계적인 ‘자원 전쟁’이 격화되면서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존의 에너지 다(多)소비국에다 최근 무서운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 등 후발주자까지 적극적으로 경쟁에 나서고 있어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한국의 ‘파이’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자원 전쟁의 ‘샌드위치’가 된 한국

리비아는 아프리카 최대, 세계 9위의 산유국. 하루 생산량만 140만 배럴이나 된다.

대외 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이 나라는 2005년부터 광구 개발권을 국제 공개입찰에 부쳐 왔다.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50여 개 광구가 분양됐지만 한국 기업들은 입찰에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마침내 보다 못한 정부가 나섰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지난해 9월 리비아 총리를 현지에서 만나 “유전개발 참여를 원하는 한국 기업들이 많다”며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있었던 세 번째 입찰에서도 한국 기업의 몫은 없었다. KOTRA 트리폴리무역관은 “러시아 회사들이 광권(鑛權)을 많이 차지했고 일본 대만 등 한국의 경쟁국도 하나씩의 광구를 배당받았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국이 자원 확보 경쟁의 샌드위치가 되는 사례는 최근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석유업체인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는 지난해 12월 이란 정부와 가스전 개발 협정을 맺었다. 총사업비만 16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란과 적대 관계에 있는 미국과의 갈등이 우려돼 한국 기업들은 이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많다.

카자흐스탄의 카림 마시모프 총리는 최근 “외국계 투자기업들이 정부와 한 계약 내용을 번번이 지키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해 왔다.

○경제 민족주의, 전 세계로 확산

이렇게 한국이 번번이 자원 경쟁에서 뒤처지는 동안 자원 부국들은 ‘미래의 생존도구’인 에너지의 확보를 위해 큰 걸음으로 나가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그동안 영국 일본 등 외국 기업들이 단독으로 추진해 오던 사할린 석유·가스 개발 프로젝트 ‘사할린-2’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자원을 무기로 삼아 외국 기업들을 밀어낸다”고 비판했지만 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왕년에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자국의 자원개발 사업권을 여기저기 내줬지만 경제가 안정을 되찾자 이를 점차 회수하고 있다는 분석.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해다 쓰는 한국은 바짝 긴장해야 할 처지다.

‘자원 민족주의’에 대응하기 위한 각국의 투자에도 불이 붙었다.

카자흐스탄에 대형 유전을 갖고 있는 캐나다 석유회사 ‘페트로카자흐스탄’의 인수합병이 좋은 사례다.

20억 달러 정도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한 이 회사에 인도의 국영 석유회사는 무려 31억 달러를 ‘베팅’했지만 페트로카자흐스탄은 41억8000만 달러를 써낸 중국의 국영 석유회사에 팔렸다.

선진국들은 자국 기업의 인수합병을 저지하는 등 새로운 ‘경제 민족주의’로 대항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민족주의적 정책은 오히려 유럽 아시아 등지로 확산되는 추세”라며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업에는 이런 움직임이 단순한 보호무역주의보다 훨씬 위협적”이라고 경고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