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순환출자 규제’ 포기할까

  • 입력 2006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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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정부가 환상(環狀)형 순환출자 규제를 도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부처 간 조율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그 대신 출총제 적용 대상기업을 자산규모 10조 원 초과 대기업집단(그룹) 계열사 중 자산 2조 원이 넘는 ‘중핵(中核)기업’으로 한정해 ‘변형된 출총제’를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가 여전히 중핵기업 출총제 외에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를 주장하고 있어 최종 정부안이 어떤 방식으로 결정될지는 미지수다.

12일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공정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런 방안을 놓고 이르면 13일 관계 장관 회의를 열어 정부안을 확정한 뒤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는 극히 일부 그룹에만 적용되는 데다 기업 부담을 줄인다는 정부 방침에도 어긋난다”며 “중핵기업 출총제와 병행(竝行)하면 ‘이중 규제’ 문제까지 생겨 중핵기업 출총제만 시행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는 환상형 순환출자와 중핵기업 출총제를 동시에 시행하려는 공정위 안(案)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최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나 “기업 부담을 늘리는 새 규제 도입은 안 된다”는 뜻을 강하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출총제를 중핵기업 출총제로 전환하면 규제 대상 기업의 수는 현재 14개 그룹, 343개에서 7개 그룹, 29개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또 지배구조 모범기업 등 출총제 예외조항이 적용되는 기업을 빼면 최종적으로 24개 기업이 규제 대상이 될 전망이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출자총액제한제도: 자산규모 6조 원 초과 그룹에 속한 계열사가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제도.

:중핵기업 출총제: 자산규모 10조 원 초과 그룹에 속한 자산 2조 원 초과 기업이 순자산의 25%를 초과해 계열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자산규모 2조 원 이상 그룹 중 ‘A→B→C→A’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출자한 그룹의 계열사에 신규출자를 금지하거나 과거의 출자구조를 바꾸도록 강제하는 제도.

▼재계 반응 “투자할 만한 기업은 여전히 족쇄”▼

정부가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를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하자 재계는 일단 안심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자산규모 2조 원 이상의 ‘중핵기업’에 대한 출자총액제한제도(중핵기업 출총제)를 유지하는 것은 투자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12일 “순환출자 규제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은 일단 고무적이지만 현행 출총제를 중핵기업 출총제로 바꾼다고 해도 실질적인 규제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중핵기업 출총제로 바뀌면 규제 대상 기업이 현재의 343개에서 29개로 줄어들지만 이들 중핵기업은 출자주력기업으로 대기업 전체 출자액의 70∼80%를 차지한다”며 “출자비율을 높이는 등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한 기업투자의 숨통을 틔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상무도 “촐총제 때문에 투자를 못 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중핵기업에 속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을 묶어두는 한 투자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들도 중핵기업 출총제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국내에 투자할 여력이 있는 기업은 자산규모가 2조 원 이상 되는 기업인데 이들을 규제 대상으로 묶어 놓으면 제대로 된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다”고 밝혔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측도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립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핵기업 출총제는 투자 여건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우려했다.

SK그룹의 한 임원은 “중핵기업일수록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를 계속 규제하고서도 원활한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꼬집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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