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필요 없습니다”…개인-기업 대출 꺼려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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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필요 없습니다.”

인천 부평구에 있는 약품용 유리용기 제조업체 S사의 한모(43) 사장은 요즘 은행에서 대출을 권유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연간 1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S사가 연말까지 필요한 목돈은 노후설비 교체비용 3억 원가량. 하지만 사내 유보금만 10억 원 정도 쌓여 대출이 필요 없다는 것.

돈을 쓸 만한 기업과 개인이 줄고 있다. 돈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돈이 돌지 않고, 이는 체감경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소비자 심리지수 7분기만에 최저

돈의 씀씀이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개인들의 소비심리 위축이다.

한국은행이 22일 발표한 ‘소비자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96으로 2분기(4∼6월)의 101보다 5포인트 낮아졌다. 이는 2004년 4분기(10∼12월)의 87 이후 7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비자 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생활형편 등이 나빠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좋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보다 많다는 뜻이다.

각종 부동산 규제와 집값 하락 가능성 때문에 개인들은 대출받기도 꺼리고 있다.

다음 달 초 전세기간이 끝나면 집을 살 생각이던 회사원 김태정(41·경기 고양시 화정동) 씨는 지금 사는 전셋집에 2년 더 눌러앉기로 최근 결정했다.

김 씨는 “집값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집에 투자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씨 같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율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4월 한 달간 3조1716억 원이 늘었던 주택담보대출은 8월엔 1조3255억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업 ‘사내금고’ 돈이 쌓이네

올해 상반기(1∼6월) 활발하게 대출을 받아 투자를 늘렸던 중소기업들은 하반기(7∼12월) 들어 다소 달라졌다. 올해 4월 5조55억 원 늘어난 은행 중소기업 대출은 8월에는 2조3840억 원 증가에 머물러 월별 증가액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박주용 기업은행 여신기획부 팀장은 “연말에 가까워지면서 중소기업들이 연간 실적을 맞추기 위해 대출을 줄이는 데다 곳곳에서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는 신호가 오면서 중소기업들도 설비투자를 미루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반면 기업들이 돈을 벌어 투자하지 않고 회사 안에 쌓아 놓은 돈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거래소시장 12월 결산 539개 제조업체의 6월 말 현재 사내 유보율은 평균 597.61%로 지난해 말 574.36%보다 23.25%포인트 높아졌다.

○ 돈 흐름 느려져…정부 대책 서둘러야

돈을 가져다 쓸 만한 기업과 개인이 줄면서 돈의 흐름은 느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계절적 요인을 반영한 통화량(M2 기준) 유통속도는 지난해 4분기 0.81에서 올해 1분기(1∼3월) 0.80으로 하락한 데 이어 2분기에는 0.79로 낮아졌다.

화폐 유통속도란 일정기간 통화 한 단위가 상거래에 사용된 평균 횟수로 이 수치가 낮아지면 개인 기업 등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금융 및 상거래가 뜸해진다는 뜻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경기가 실제보다 더 나쁘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돈의 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개인에 대해서는 부동산 거래 활성화 방안을, 기업에 대해서는 투자를 유도할 규제완화와 공공투자 확대 등의 조치를 서둘러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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