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년 화폐 변천사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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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는 ‘한 나라의 얼굴’이라고 한다. 많건 적건 화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없는 데다 나라 밖에서도 국기보다 더 자주 노출되는 것이 화폐다. 한국의 ‘얼굴’은 일제의 강점, 광복 이후 격변 등으로 여러 차례 모습이 바뀌었다. 화폐 변천사를 통해 60년 전 광복 이후의 경제와 사회상을 돌아본다.》

○ 주권은 되찾았지만…

일제 치하에서는 원(圓), 전(錢) 단위의 ‘조선은행권’이 쓰였다. 앞면 인물초상은 관을 쓴 긴 수염의 노인이었으며 일본 정부 휘장인 오동꽃 도안이 선명했다.

이 노인에 대해서는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수노인(壽老人)이라는 설과 조선 말기 문장가 운양 김윤식(雲養 金允植)의 초상이라는 설이 엇갈리고 있다.

광복 후에도 조선은행권은 한동안 그대로 쓰였다. 1946년 7월 일본어 문구를 삭제하고 오동꽃 대신 무궁화를 새겨 넣었지만 인물초상은 그대로였다. 정체불명의 노인은 1949년 발행된 10원권 도안으로 독립문이 채택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일제의 잔재는 1950년 6월 한국은행이 설립되고 그해 7월 최초의 한국은행권(1000원권, 100원권)이 발행되고도 계속 남았다. 조선은행권이 1953년 화폐개혁 때까지 유통됐기 때문이다.

광복 60주년이 된 지금까지 완전한 ‘화폐 주권’을 찾지 못했다는 주장도 있다. 지폐 앞면 ‘총재의인’이라는 직인의 서체나 형태가 조선은행권과 똑같다는 것.

한국은행은 내년 상반기에 선보일 새 5000원권부터 직인을 바꿀 예정이다.

○ 화폐에 투영된 격동 60년

6·25전쟁은 화폐에서 일제 잔재를 없애는 데 일조했다.

전쟁 중 북한이 조선은행권을 불법으로 대거 발행하자 정부는 1950년 8월부터 1953년 1월까지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과 일대일로 교환하도록 하고 100원권 조선은행권 유통을 정지시켰다.

1953년 2월 15일 긴급통화조치가 단행됐다. 전쟁의 여파로 산업활동이 위축되고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혼란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였다.

화폐 단위가 원에서 환((원,환))으로 바뀌고 100원이 1환이 됐다. 조선은행권 7종과 일본 정부의 소액 보조화폐(1전 주화)도 자취를 감췄다.

화폐 단위는 1962년 또 바뀌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장롱 속 자금을 산업자금화하려는 의도로 6월 10일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이 화폐개혁은 장롱 속 자금을 끌어낸다는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화폐사 측면에선 한글 ‘원’ 표시 화폐가 처음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70년대는 고도성장으로 국민소득이 크게 늘고 경제규모도 커져 고액권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가장 고액권이었던 500원권 외에 1972년 5000원권, 1973년 1만 원권이 발행됐다. 1975년에는 중간 액면인 1000원권이 나왔다.

1만 원권이 발행된 지 32년. 경제규모는 한층 커졌지만 액면은 그대로다.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지만 정부는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고액권 발행 논의를 중단한 상태다.

○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화폐 도안

1950년 한은 설립 이후 발행된 지폐 도안만 해도 인물 6종, 건축물 6종 등 모두 12종에 이른다.

인물은 1960년 1000환권에 처음 쓰인 세종대왕을 비롯해 율곡 이이, 퇴계 이황, 충무공 이순신 등 역사인물 말고도 이승만 전 대통령, 이름 없는 모자(母子) 등이 있다.

이 전 대통령은 1950년 발행된 1000원권에 처음 등장했다. 이후 새 1000원권, 500원권, 새 100환권 등 1954년까지만 해도 이 전 대통령의 초상은 지폐 왼쪽에 치우쳐 있었다.

1956년 발행된 500환권이 문제였다. 대통령의 초상을 지폐 한가운데로 옮긴 것. 얼마 되지 않아 시중에는 대통령의 초상이 두 쪽으로 찢어지거나 심하게 닳은 지폐가 유통됐다.

항간에는 ‘독재자를 욕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초상을 중앙에 넣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고 결국 한은은 이듬해 새 1000환권부터 대통령 초상을 지폐 오른쪽에 배치했다.

1962년 5월 16일 발행된 100환권의 모자상은 최단명 모델이다.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이 지폐는 저축을 장려한다는 뜻에서 발행됐으나 불과 20여 일 뒤 화폐개혁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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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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