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2004년 8조 순이익… 虛와 實

  • 입력 2005년 2월 10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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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국내 은행이 지난해 모두 8조 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전년(1조7000억 원)은 물론 지금까지 순이익을 가장 많이 냈던 2001년(5조3000억 원)보다 훨씬 많은 것.

우리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조흥은행 포함) 하나은행(잠정) 등은 ‘순이익 1조 원 클럽’에 포함됐다.

하지만 ‘거품’은 없는 걸까. 10일 현재 지난해 실적을 공식 발표한 우리 신한 국민 외환 조흥은행을 중심으로 시중은행 영업실적의 허와 실을 살펴본다.

▽회계의 ‘마술’=우리은행은 지난해 1조996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7067억 원(35%)은 기업회계와 세무회계 기준이 다른 데서 생긴 ‘이연법인세 차’이다.

은행은 유가증권 평가손실 등을 매년 비용으로 처리해 결산하지만 세무회계는 향후 손실이 확정될 때까지 비용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과거 필요 이상으로 많이 냈던 법인세를 한꺼번에 이익으로 잡게 된 것.

결국 영업을 잘해서 얻은 이익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지난해 1조4512억 원을 남겨 2003년(1조5138억 원)에 비해 4.1% 감소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지동현(池東炫) 연구위원은 “다른 은행들도 세금 효과나 부동산 매각차익 등 특별이익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은행들이 올린 이익의 ‘질’은 좋은 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충당금 효과=은행 성적표를 좌우하는 요인은 단연 대손충당금이다.

대손충당금이란 돌려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출을 비용으로 처리하기 위해 미리 쌓아두는 돈. 영업이익이 많이 나도 부실 대출이 늘어 충당금을 많이 쌓아야 하는 형편이라면 당기순이익은 줄어든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판매관리비를 뺀 뒤 5조3815억 원의 이익을 냈지만 대손충당금이 무려 4조3941억 원에 이르러 1조 원을 밑도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국민은행이 지난해 쌓은 대손충당금은 2003년에 비해 27% 줄어든 것.

신한은행도 지난해 8441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여기에는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2003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 크게 작용했다.

대손충당금 부담이 줄어든 것은 대출심사 강화 등 부실자산을 줄이기 위한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해 기업에 거액을 물리는 ‘악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덕분.

일부 은행은 SK네트웍스가 정상화하면서 미리 쌓아 뒀던 충당금을 정상으로 돌리고 과거 러시아에 빌려줬던 차관 자금의 연체이자를 회수하는 ‘횡재’를 하기도 했다.

▽‘이자 장사’는 여전=2003년에 비해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시중은행들의 막대한 당기순이익은 여전히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의 차, 즉 이자 부문 이익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고객의 호주머니를 털어 손쉽게 돈벌이를 한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지난해 판매관리비를 빼기 전 영업이익에서 이자부문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신한은행이 76.6%로 가장 높았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이자 부문 이익 비중은 각각 74.1%, 73.5%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1∼9월 8개 시중은행의 예대금리차는 평균 3.59%로 2003년에 비해 0.23%포인트 높아졌다.

국민은행이 4.39%로 가장 높았고 조흥 외환 우리 제일은행 등이 3%대로 뒤를 이었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韓丁太) 리서치금융팀장은 “선진국 상업은행들의 영업이익 중 이자부문 비중은 대개 60% 이하”라며 “다양한 수입원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이강운 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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