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환율추락… 세 자릿수 시간문제

  • 입력 2005년 1월 30일 17시 33분


코멘트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이 머지않아 1000원 선 밑으로 하락(원화가치 상승)해 ‘세 자릿수 환율 시대’가 1997년 이후 8년 만에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28일 원-달러 환율은 7년 2개월여 만에 가장 낮은 달러당 1024.1원까지 떨어졌다. 국내 수출기업들은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며 아우성이다. 유학생 학부모 등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개인들도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세 자릿수 환율 시대 열리나=시기가 문제일 뿐 원-달러 환율 900원대 진입은 대세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달 초 시나리오별 환율 전망에서 미국이 (재정 및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약한 달러화 용인’과 ‘점진적 금리 이상’이라는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중국이 연내 3% 선의 (완만한) 위안화 평가절상을 한다면 원-달러 환율은 연평균 960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申민榮) 연구위원은 “작년 말처럼 급락세를 보일 것 같지는 않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환율이 980원이나 970원 선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자봉(金資峯) 연구위원은 “곧바로 원-달러 환율 1000원대가 붕괴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세 자릿수가 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 왜 떨어지나=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은 다음달 4,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G7) 회담에서 중국이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용인할 수도 있다는 점.

위안화가 절상되면 아시아 국가 통화 전반에 영향을 미쳐 원화도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우리은행 시장운용팀 이정욱(李政昱) 과장은 “현재 달러당 8.277위안에 고정돼 있는 위안화 가치가 8.077위안 정도로 오르면 원-달러 환율은 25원가량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환율이 하락하는 근본 원인은 미국의 막대한 재정 및 무역수지 적자. 미국 정부는 대규모 적자를 달러화를 새로 찍어내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를 초래하고 원화가치는 오르게 된다.

국내 요인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경상수지 흑자로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공급이 늘면서 환율이 떨어지고 있다.

▽환율 하락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은=수출업체들은 원화로 환산한 수출대금이 줄어 가만히 앉아 손실을 보게 된다.

무역연구소는 올해 손익분기점 환율을 대기업은 950원 선, 중소기업은 1050원 선으로 예측했다.

무역연구소 신승관(辛承官) 연구위원은 “올 평균 환율이 1000원이 되면 상품수지 흑자 규모가 연간 63억∼64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환율 하락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원자재를 수입하는 업체는 이익을 보게 된다.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은 도산하거나 해외로 생산근거지를 옮기는 등 산업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된다.

금융연구원 박해식(朴海植) 연구위원은 “환율이 하락하면 물가가 안정되고 실질소득이 높아져 소비를 진작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LG경제연구원 신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뿐 아니라 원-엔 환율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에는 원-엔 환율이 100엔당 평균 1060원 선을 유지해 한국 수출상품이 일본 상품에 비해 경쟁력이 있었지만 최근 990원대로 떨어져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별 환율 전망
상황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 전망
수출증가율(%)경제성장률
(%)
경상수지 흑자
(억 달러)
물가상승률
(%)
시나리오 1
(달러화 점진적 약세)
미국이 ‘약한 달러화 용인’과 ‘점진적 금리 인상’이라는 현재 정책기조를 유지, 중국이 연내 3% 선의 완만한 위안화 평가절상 단행할 경우960원7.83.069.92.0
시나리오 2
(달러화 급격한 약세)
미국의 현 정책기조가 유지되더라도 중국이 위안화 평가절상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920원5.32.05.71.3
시나리오 3
(달러화 강세로 전환)
미국이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해 재정적자를 해결하고 중국이 위안화를 15% 정도 대폭 절상할 경우1060원9.33.7145.63.3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기업 비상경영▼

달러당 1020원대로 떨어진 달러당 원화환율이 조만간 ‘세 자릿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국내 수출기업들은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현대자동차 고위 관계자는 “작년 11월 원-달러 환율이 올해 사업계획 기준 환율인 1050원에 근접했을 때 비상경영을 선포했다”며 한숨을 지었다.

현대차는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매출이 약 2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는 “최대한 유로화 결제 비중을 늘리고 유럽시장을 집중 공략해 달러화 비중을 낮추는 것을 최우선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매출액 24조6000억 원의 약 80%(19조5000억 원)를 수출로 올린 LG전자도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원-달러 환율이 10% 떨어지면 매출액이 약 1조 원 줄어들기 때문.

LG전자 재경담당 권영수(權暎壽) 부사장은 “올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을 970∼980원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수출을 10% 늘려 환율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를 상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올해 기준 환율을 1050원으로 잡았던 삼성그룹은 추가 환율 하락에 따른 품목별 대책을 새로 마련했다.

중소기업은 말 그대로 ‘비상’이다.

사무용 의자 바퀴를 생산하는 대경정공(대구 동구 동호동)은 원자재인 철강 가격이 최근 t당 10% 이상 오른 데다 환율까지 하락해 ‘이중고’를 겪고 있다.

대경정공 박석현(朴奭玄) 이사는 “내수침체가 길어져 수출 비중을 늘려왔다”며 “외국 바이어를 붙잡기 위해 7%가량 손해 보며 ‘울며 겨자 먹기’식 수출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주식시장은 아직 환율 움직임을 관망하는 분위기다. 29일 종합주가지수는 수출 비중이 높은 전기전자와 자동차, 조선업종 주가가 약세를 보여 3.28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코스닥종합지수는 3.28포인트 올랐다.

한화증권 이종우(李鍾雨) 리서치센터장은 “달러화 약세는 예견된 일이어서 국내외 투자자가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며 “그러나 환율이 세 자릿수로 떨어지면 심리적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개인 換테크▼

기업뿐 아니라 해외를 자주 오가는 사람,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 외화 표시 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람도 환율 변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달러당 원화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할 때의 환(換)테크 요령을 알아봤다.

▽달러화 일찍 팔고 늦게 사야=달러화를 팔 사람은 환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팔고 달러화가 필요한 사람은 더 떨어진 후 사야 유리하다.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도 송금시기를 늦추는 게 좋다.

해외여행을 할 때는 꼭 필요한 만큼만 달러화로 바꿔 나가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것이 낫다. 신용카드는 사용시점이 아니라 결제시점의 환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그 사이 환율이 떨어지면 그만큼 이익을 볼 수 있다.

▽환전도 계획을 세워=환율이 하락 추세라고 해도 날마다 등락하므로 정작 환전하는 순간 환율이 어느 수준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은행의 환율 통지서비스를 활용하면 자신의 자금계획에 맞는 환율 수준에 도달했을 때 환전할 수 있다.

6개월 뒤 자녀 유학자금으로 1만 달러가 필요한 사람이 현재보다 4원가량 낮은 1020원에 환전하겠다고 생각한 경우 은행에 등록하면 환율이 1020원 됐을 때 문자메시지 등으로 알려 준다.

적립식 환전도 하나의 방법. 2년 뒤에 쓸 유학자금 4만8000달러가 필요하면 한 달에 2000달러씩 환전해 두는 것. 2년간 평균 환율 수준에서 환전하게 되는 셈이다.

▽금융상품=환율 변화에 따라 금리가 정해지는 환율 연동 정기예금에 가입할 때 환율이 하락하면 높은 금리를 주도록 설계된 상품을 골라야 한다.

달러화로 표시되는 해외펀드에 가입할 때는 선물환계약 등으로 환율 변동 위험이 없거나 줄어든 상품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환 위험 헤지는 만기까지 보유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에 중간에 돈이 필요해 찾을 때는 환차손을 보게 된다. (도움말=하나은행·외환은행)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