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車 광주노조 ‘취업장사’ 파문

  • 입력 2005년 1월 21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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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입사지원서 받자” 장사진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생산직 입사지원서를 배포한 지난해 10월 1일 5000여명이 몰려 이 일대가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원서를 받기 위해 길게는 6시간 동안 줄을 서기도 했다. 사진 제공 광주일보
지난해 “입사지원서 받자” 장사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생산직 입사지원서를 배포한 지난해 10월 1일 5000여명이 몰려 이 일대가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원서를 받기 위해 길게는 6시간 동안 줄을 서기도 했다. 사진 제공 광주일보
‘채용 비리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생산계약직 근로자를 채용하면서 회사가 노조에 일정 인원의 추천권을 준 것으로 확인돼 사건이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인원 할당은 회사가 노조에 ‘채용 장사’를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노사 양측의 도덕성은 물론 기업 이미지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기아차 측은 지난해 광주공장에 입사한 부적격자 규모는 450명이 아니라 399명으로 확인됐다고 21일 밝혔다.

▽채용 비리는 노사(勞使) 합작품=최근 퇴직한 인사팀장 등 6명은 20일 오후 검찰 조사에서 “지난해 5월 신규 인력 채용에 앞서 가진 노사 협의에서 노조 측에 30%의 인원을 할당해 주기로 합의했다”고 진술했다.

사실 신규 인력 채용시 노조와 사 측의 인원 할당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1996년 입사한 노조원 A 씨(38)는 “사 측이 노조 측에 채용 인원 가운데 일정 규모를 할당해 주면 노조가 현장 조직별로 나눠 추천 인원을 정한 뒤 사 측에 보내곤 했다”고 말했다.

광주공장 노조는 조합원이 4600여 명으로 노조 안에 노선별로 ‘미래를 지향하는 노동자회’, ‘기아민주노동자회’, ‘현장의 힘’ 등 크게 3개 조직이 있으며 조직별로 인원을 할당한다는 것.

A 씨는 “지난해 채용 인원 할당 과정에서 3개 조직이 서로 ‘자기 몫이 적다’며 내부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공장 관계자는 “노조 간부가 특정인을 채용해 달라고 요청하면 회사 측이 받아들이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느냐”면서 “400명에 육박하는 부적격자가 채용된 것도 상당수는 노조의 입김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관계자도 “파업권을 갖고 있는 노조가 인사 청탁을 하면 안 들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파장=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노조 추천권’ 행사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광주공장 노조지부장의 개인 비리 차원에서 내사를 벌이던 검찰이 이날 전담반을 꾸리고 회사 사무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해 채용된 1079명의 근로자 가운데 399명이 나이와 학력을 속이고 입사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노조가 부적격자인 이들에게서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인사 기준에 미달된 직원이 채용된 사실을 회사 관계자들이 몰랐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경찰은 취직 알선을 둘러싼 브로커들의 사기행각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해 11월 “기아차 간부에게 돈을 건네면 취직할 수 있다”고 속여 김모 씨(30)에게서 2000만 원을 받는 등 3명에게서 모두 5000여만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로 A탁송회사 대표 유모 씨(74)를 공개 수배했다. 지난해 10월에도 “친한 기아차 노조 간부에게 돈을 주면 채용될 수 있다”며 구직자들에게서 금품을 챙긴 권모 씨(46)와 주모 씨(42)가 불구속 입건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기아車 광주공장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은 1965년 아세아자동차로 시작했다. 기아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된 후 승합차와 트럭, 군용차량 등을 주로 생산하다가 지난해 8월 ‘스포티지’ 생산라인이 구축되면서 연산(年産) 규모가 35만 대로 확대됐다. 기아차 광주공장이 채용비리에 휩싸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높은 임금과 고용 보장 때문.

고졸 생산직 초임은 하루 2시간의 잔업수당과 토요일 특근(8시간)을 포함해 연봉 3200만 원 정도.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지난해 고졸 근로자 초임(1622만8000원)의 2배 수준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연말 성과급과 격려금을 포함하면 실제 연봉은 4000만 원 선”이라고 말했다.

고용이 안정돼 있다는 점도 매력. 기아차는 단체협상에서 근로자에 대한 인사조치는 노조와 회사 측이 같은 수로 참여하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토록 했다. 사실상 해고 등 근로자 징계가 어렵게 돼 있는 셈.

회사가 근로자를 다른 부서로 발령할 때도 노조의 동의를 구하도록 돼 있어 보직 변경에 따른 퇴출 압력도 낮다.

이런 인기 때문에 지난해 10월 초 생산직 83명을 모집할 때 5133명이 응시(경쟁률 61.8 대 1)할 정도였다. 대기업들이 공식적으로 밝힌 생산직 근로자 입사 경쟁률 가운데 사상 최고였던 것. 당시 광주공장 주변에는 입사지원서 접수 행렬이 2km나 됐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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