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신약 전쟁]제약 메이저들 M&A경쟁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7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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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제약업체들이 최근 신약(新藥) 개발을 놓고 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의약산업의 경쟁 구도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본보는 이달 초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 주소를 점검한 데 이어 선진 제약사들의 치열한 경쟁 현장과 바이오산업의 꽃이라 불리는 신약 개발 움직임을 국내외 취재를 통해 살펴본다.》

▽대형 제약사 인수합병(M&A) 바람=독일 레버쿠젠 시(市) 부근의 바이엘 부퍼탈 연구 단지. 바이엘 회사 직원들은 이 연구 단지를 ‘보물 창고’라고 부른다. 연간 수십 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아스피린’과 같은 신약 재료가 이 건물에서 계속 쏟아지기 때문이다.

연구소 한쪽에서는 로봇들이 600만여 개에 이르는 신약 재료로 사용되는 각종 화학 합성물들을 뽑아내 일정 분량씩 섞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신약 후보 물질을 결정하기 위해 수만 개의 합성물을 분리하거나 혼합해 화학 반응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정교하게 움직이는 로봇들의 팔은 1년 내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이런 작업을 계속한다.

독일 부퍼탈의 바이엘 헬스케어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의 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바이엘그룹

헬스케어 연구소 마틴 비참 박사는 “수천만 종류의 실험이 끝난 뒤에야 새 물질이 나온다”며 “바이오테크와 같은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신제품 개발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 단지에서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보통 10∼12년. 여기에 투자되는 비용은 9억 달러(약 9450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나온 발기부전 치료제 ‘레비트라’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바이엘은 올해 스위스 로슈사(社)의 일반 의약품 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미국의 셸링사와 전문 의약품 부문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지난해 연구개발(R&D)비로 11억2000만 유로(약 1조5800억 원)를 쏟아 붓고 국제특허가 19만 개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의 대형 제약사와의 경쟁에서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바이엘과 같은 대형 제약사의 인수합병(M&A)은 이미 국제적인 대세가 됐으며 대형 제약사들은 이를 통해 R&D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의 화이자는 1990년 세계 14위의 제약사였으나 2000년 M&A를 통해 1위 기업으로 올랐다. 화이자는 지난해 8조 원을 R&D에 투자하며 97개의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화이자는 2006년까지 15개 신약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등록할 계획이다.

영국의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도 회사 간 M&A를 통해 세계 2위의 제약회사로 탄생했다. 이 회사도 지난해 5조5000억 원을 R&D에 투자했으며 바이오벤처기업의 특허를 사들여 신약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당시 바이오벤처기업인 미국의 암젠은 2002년 M&A를 통해 미국 내 10대 제약사로 변신했다.

▽바이오테크가 경쟁력의 원동력=대형 제약사들은 인간게놈프로젝트(HGP)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바이오벤처기업에 1990년대 말까지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대형 제약사들은 바이오벤처를 직접 인수하거나 제약사 간 M&A와 제휴에 몰두하고 있다.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신약 개발 단계부터 직접 흡수해 세계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것이 이들 제약사의 계획이다. 바이오 기술 혁명으로 난치병 치료제 등 R&D의 범위가 넓어지고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 제약회사들의 신약 개발 부문의 독점적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LG생명과학 박순재 상무는 “선진국 대형 제약회사들의 바이오벤처 인수전략은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형 제약사들의 경쟁 구도도 바뀌고 있다.

LG생명과학 측은 “1998년 이후 세계 시장에서 판매된 신약의 70%가 미국 제품이고 유럽은 18%에 불과하다”며 “바이오테크 기술이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유럽의약산업연합(EFPIA)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1990년 유럽은 세계 최대 시장이었으나 지난해 미국이 1위가 됐다”며 “이는 미국에 본사를 둔 제약사의 신약 개발과 바이오 기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바이오니아 박한오 사장은 “외국의 대형 제약사의 M&A와 신약 개발 경쟁을 보면 국내 토종 기업이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레버쿠젠=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세계 각국 1위 제약사 매출액 비교(단위:백만 원)
한국일본미국영국
회사명매출액회사명매출액회사명매출액회사명매출액
동아제약492,485다케다약품공업9,120,342화이자47,235,792GSK35,538,584
2003년 매출액 기준. 당시 평균 환율 달러당1192원 적용. -자료:한국제약협회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레버쿠젠=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25조 vs 2500억…국내10대기업 年평균매출 외국보다 열세▼

‘한국 시장에서 벗어나야 생존할 수 있다.’

국내 제약사와 바이오 업체들은 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국내 시장에서만 매출을 올리는 ‘로컬 기업’에서 탈바꿈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국내 상위 제약사들은 매년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영세한 벤처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제약협회가 최근 조사한 결과 국내 10대 제약기업의 지난해 총매출액은 2조4998억 원으로 이 가운데 1647억 원을 R&D에 투자했다.

이는 2001년의 2배가 넘는 규모로 국내 기업들의 신약 개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제약협회 측은 분석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R&D 투자비는 세계 10대 제약기업에 비하면 여전히 영세한 규모다.

세계 10대 제약기업의 지난해 평균 매출액은 25조 원으로 국내 10대 기업의 매출을 합한 액수의 10배가 넘는다.

R&D 비용 격차는 더욱 심하다. 지난해 세계 10대 기업의 평균 R&D 비용은 4조3000억 원으로 국내 상위 10개사 총액의 26배 이상이다. 국내 제약업체는 선진 기업들의 파상 공세를 일단 저렴한 가격으로 맞서고 있다.

한국 제약사들은 올해 하반기 고혈압 약과 당뇨병 치료제 시장에서 오리지널 제품보다 20∼25% 저렴한 개량 의약품인 제네릭(Generic)을 내놓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제네릭은 특허출원 기간이 끝난 오리지널 의약품의 성분 일부를 바꾸고 약효는 똑같이 만든 복제 의약품으로 개발비용이 낮아 약값이 저렴한 편이다.

국내 제약사가 개발 중인 신약 현황
업체개발 품목
LG생명과학서방형 성장호르몬
유한양행위궤양치료제
부광약품B형 간염 치료제
한미약품경구용 항암제
동아제약에이즈 백신
자료:대신경제연구소

하지만 복제 의약품만으로 경쟁력을 지키기 어려운 것이 시장의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해외 시장 진출과 바이오산업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의 수출 규모는 2000년 6억5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7억38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또 중국 중동 등지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는 기업도 해마다 늘고 있다.

LG생명과학은 올해 개발을 끝낸 항생제인 ‘팩티브’와 성장호르몬 B형 간염 치료제의 해외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한미약품도 제네릭 개발 능력을 토대로 올해 유럽과 중동에서 4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릴 계획이다. 중외제약과 유한양행도 항진균제와 에이즈 치료제 원료를 일본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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