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제 ‘슈퍼맨 신드롬’…주중엔 빡빡한 업무-주말엔 집안일

  • 입력 2004년 8월 2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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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週中) 5일은 빡빡해진 업무처리로 훨씬 바빠졌습니다. 주말에는 이전에는 안하던 집안일까지 신경 쓰느라 지쳐버립니다. 회사일과 가사, 양쪽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정신적으로도 피곤합니다.” 현대백화점 본점 잡화팀 박종희(朴鍾熙·36) 과장은7월부터 시행된 주40시간 근무제(주5일 근무제)가 반갑지만은 않다. 처리해야 할 일의 양은 같지만 토요일을 쉬게되면서 업무시간이 짧아져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시간을 줄일 정도로 업무 강도가 세졌다. 이틀을 쉬는 주말이면 아내는 5세, 2세짜리 두 딸을 제대로 봐주고 청소와 설거지에도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주말 나들이와 친가 및 처가 방문도 잦아져 토, 일요일에는 하루 3∼4시간씩 운전해야 했고 경제적 부담도 커졌다. 이 때문에 월요일 아침에는 이전보다 더 지친 상태로 출근한다.》

1000명 이상 사업장에 대한 주40시간 근무제가 7월 1일부터 의무화된 지 벌써 50일이 지났다. 그러나 대기업에 다니는 많은 남자 회사원들이 박 과장과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이른바 ‘슈퍼맨 신드롬’에 시달리는 남성이 많아진 것.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申鉉岩) 수석연구원은 “주40시간 근무제로 남자 회사원들이 겪고 있는 증상은 ‘슈퍼우먼 신드롬’과 대단히 유사하다”면서 “달라진 생활패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만 2년째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한 신한은행의 최근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 은행원 400명 중 34%의 응답자는 ‘주말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심해졌다’고 답했다. 또 가족의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10%), ‘월요병이 심해졌다’(14%)는 의견도 나왔다.

또 주말에 제대로 쉬지 못하는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들은 주5일 근무를 하는 직장과 비교돼 상대적으로 가정에 대한 정신적 부담이 커졌다고 호소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해냄합동법률사무소 김형선(金炯先) 변호사는 “주위에서 토요일에 쉬는 사람이 많아져 주말에 일하러 나올 때 아내와 아이 보기가 미안하다”면서 “이를 벌충하기 위해 하루라도 쉬는 날이면 철저히 ‘봉사’하느라 피로가 쌓인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삶의 대부분을 직장생활 등 사회적 관계에 투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온 한국의 남자 회사원들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세대 황상민(黃相旻·심리학) 교수는 “주5일 근무제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지만 남자 회사원들이 남편이자 아빠로서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지 못해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라며 “자신과 가족, 사회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슈퍼우먼 신드롬(Superwoman Syndrome):

교육받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크게 늘어난 1980년대 미국에서 회사 업무와 가사를 모두 완벽하게 처리하려다 녹초가 돼버린 여성들이 겪던 증상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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