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깨기’ 生保 해약-실효 40%늘어…환란이후 최고

  • 입력 2004년 5월 18일 18시 11분


18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C생명 지점. 주부 K씨(37)가 자녀의 교육보험을 해약하기 위해 창구를 찾았다. 창구 여직원은 K씨에게 “이대로 해약하면 해약환급금이 그동안 납부한 보험료의 절반밖에 안돼 110만원가량을 손해 본다”며 약관대출을 권유했다.

하지만 K씨는 한숨을 내쉬더니 “당장 돈이 급하고 앞으로 보험료를 계속 납부할 자신도 없다”며 보험을 해약했다.

K씨는 2001년 말에 외동딸의 미래를 위해 월 9만8000원을 납부하는 교육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전기설비 업체를 운영하는 남편의 사업이 경기침체로 어려워지면서 당장 생활비마저 쪼들리게 됐다. 결국 이날 마지막까지 남겨놓았던 교육보험을 해약하게 된 것. 남편과 자신의 명의로 된 보험은 해약한 지 오래다.

이처럼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생계를 위해 보험을 해약하거나 2개월 이상 보험료를 납부하지 못해 보험계약의 효력이 상실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또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무보험 차량이 늘어나면서 이에 의한 사고 피해도 급증하고 있다.

18일 생명보험 업계에 따르면 2003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가 시작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2월까지 11개월 동안의 보험 효력상실·해약은 모두 819만건으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는 2002회계연도 전체의 598만8000건보다도 이미 220만2000건(36.8%)이 많은 것으로 올 3월의 효력상실·해약 건수까지 포함하면 증가율은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생명보험의 효력상실·해약 건수는 회계연도 기준으로 1996년만 해도 499만6000건에 그쳤으나 외환위기가 닥친 97년과 98년 두 해 연속 급증했다. 이후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99년부터 다소 줄었으나 지난해 다시 크게 늘어났다.

또 이날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무보험차량 사고 건수도 9733건으로 2000년 9811건에 이어 외환위기 이후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이로 인한 피해액도 지난해 604억4700만원으로 외환위기 전인 96년의 260억3300만원에 비해 약 2.4배로 늘어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서민들이 저렴한 보험료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근 생활비 때문에 보험을 해약하는 생계형 해약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소비자연맹 조연행 사무국장은 “보험사로부터 받을 보험금 규모를 줄이는 대신 보험료를 완납한 것으로 처리하는 ‘감액완납 제도’, 보험료를 보험사가 지급준비금에서 우선 충당하도록 한 후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갚는 ‘자동대출제도’ 등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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