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늪… 서민들 집마저 날린다

  • 입력 2004년 5월 17일 18시 25분


경기 수원시의 A씨는 병원비를 대려고 감정가 2000만원짜리 13평형 빌라를 담보로 사채 900만원을 빌렸으나 갚지 못했다. 최근 경매에 넘겨진 그 빌라에는 병원비 500만원에 대한 저당권도 설정돼 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사는 B씨는 은행 빚 1500만원을 갚지 못해 23평형 빌라를 경매로 넘겨야 했다. 카드빚과 자동차할부금이 결정적이었다. 감정가 1억2000만원인 그 빌라는 3월 말 6950만원에 낙찰됐다.

최근 매물로 나온 서울 명동의 7평짜리 회전초밥 점포의 권리금은 1억원. 1년 전에는 1억5000만원이었다.

시중 경기가 바닥을 헤매면서 주로 서민들의 소유였던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 물건이 급증하고 있다. 이는 경기가 악화되면 서민경제부터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가 권리금이 떨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17일 경매 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경매 물건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올해 들어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 수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지역의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 수는 지난해 상반기 월평균 500건에서 지난해 하반기 647건, 올해 들어 4월까지 978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국의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은 이 기간에 월평균 3394건(지난해 1∼6월)에서 7664건(올 1∼4월)으로, 전국의 경매물건 총수는 2만4698건(지난해 1∼6월)에서 3만2918건(올 1∼4월)으로 급증했다.

디지털태인 이영진 부장은 “경기가 나쁠수록 경매 물건이 늘며, 특히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 물건 수 증가는 서민경제의 침체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2∼3년간 다세대, 다가구와 연립주택이 연간 20만가구씩이나 공급되면서 빈 방이 늘고 임대료가 떨어져 건축주나 임대사업자들이 파산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서민 체감경기의 또 다른 바로미터인 상가 권리금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명동, 목동5거리, 이화여대 앞, 테헤란로, 강남 학원가 등 핵심 상권의 상가 권리금이 올 초부터 밀리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조사 결과 수도권지역 25개 주요 상권의 상가 권리금은 1·4분기(1∼3월) 동안 전 분기에 비해 평균 3.7% 하락했다.

권리금 하락세는 4월 들어 서초구 양재동, 동대문구 청량리동 등 서울 부도심권이나 경기 고양시 일산구 주엽동 마두동 등 일부 신도시 중심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상가114 유영상 투자전략연구소장은 “서민층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막연히 유동인구만 바라보고 장사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면서 “고정적인 배후상권이 결합된 내실 있는 상권이 아니라면 당분간 권리금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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