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점에서 은행대출?

  • 입력 2004년 4월 20일 13시 55분


아파트담보대출을 알아보던 정모씨(34·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는 최근 할인점 홈플러스에 갔다가 '동부화재와 제휴-아파트담보대출 파격 금리'라는 푯말을 보고 솔깃해졌다.

상담원은 "일반 대출상품 금리는 연 6.5%이지만 홈플러스 고객은 연 5.9%"라며 "은행의 5%대 대출은 3개월마다 금리가 변동되지만 이 상품은 금리가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출금의 0.1%가 마일리지로 적립돼 홈플러스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고 근저당설정비와 취급수수료도 없다는 설명에 대출을 고려하고 있다.

유통업체와 금융업의 제휴가 급속히 늘고 있다. 일부 유통업체는 제휴를 발판으로 장기적으로는 금융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출발은 좋다=홈플러스가 동부화재와 제휴해 1월말부터 판매한 아파트담보대출의 월간 실적은 약 200억원으로 20일 현재 누계는 660억원. 동부화재 박경식 융자파트장은 "보험설계사 8000여명이 한 달에 파는 아파트담보대출이 50억~6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큰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0월 국내 홈쇼핑 가운데 처음으로 보험을 판 현대홈쇼핑의 경우 그동안 18만 건의 상담을 거쳐 6만 건 이상을 계약으로 성공시켰으며 LG홈쇼핑도 방송 1회에 5000~1만 건의 상담 전화를 통해 30%가 계약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CJ홈쇼핑 LG홈쇼핑 우리홈쇼핑 등도 잇달아 삼성생명 교보생명 대한생명 등과 제휴해 보험 시장에 뛰어드는 것도 이 때문. 인터넷포털 다음은 지난해 말 LG화재와 합작 보험사인 '다음다이렉트라인'을 설립했다.

▽유통과 금융의 시너지=이처럼 유통과 금융의 제휴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유통의 경우 고객에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의 데이터베이스 확보,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구매를 위한 자금의 조달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

LG투자증권 박진 애널리스트는 "고객의 신용도를 잘 파악하려면 금융업과 제휴할수록 유리하다"며 "롯데백화점이 카드 사업부문을 롯데카드에 넘긴 것도 금융기관이 고객의 신용을 더 잘 분석할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라고 말했다.

홈쇼핑에서는 보험이 틈새상품에서 주력상품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대홈쇼핑 보험담당 이준호 주임은 "홈쇼핑은 2002년 정점에 올라설 때까지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팔아 무형의 상품에까지 진출하게 된 것"이라며 "서비스 상품은 수수료가 높고 쉽게 변형할 수 있어 유리하다"고 말했다.

금융업은 판매 채널을 다양화로 많은 고객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고 고객은 금융업체가 절감된 비용만큼 가격을 낮추기 때문에 유리하다.

▽유통업의 금융업 진출, 전망은?=홈플러스는 금융업에 진출해 성공한 대주주 영국의 테스코를 모델로 삼고 있다. 테스코는 1997년 은행과 합작 투자회사를 설립한 뒤 할인점 내에서 은행과 보험 업무를 시작했다. 현재는 300만 명의 고객을 확보, 지난해 순이익 3000억원을 냈다.

LG경제연구소의 박정현 연구원은 "유통업체의 수익 원천 다변화와 금융업의 판매채널 다양화라는 이해관계가 맞물려 한동안 금융과 유통의 제휴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정부의 금융 규제로 유통업이 금융업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고 제휴의 경우에도 소비자가 '낮은 비용' 대신 포기해야 하는 서비스의 질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유통과 금융의 고객 특성이 다르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충동구매가 잦은 홈쇼핑, 그리고 온갖 소비자가 다 들락거리는 할인점과 요리조리 따져본 뒤 구매결정을 하는 금융상품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1998년 할인점에 출장소를 냈다가 지난해 철수한 한미은행 측은 "할인점을 찾는 고객 가운데는 한미은행 고객이 적어 수익성이 낮았다"고 말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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