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 시대](3)한국타깃…취약구조 개방 안통해

  • 입력 2004년 2월 22일 19시 12분


코멘트
소버린은 왜 투자대상으로 한국의 SK㈜를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 가다보면 기업 사냥시대에 있어 취약점을 가진 한국 재벌의 모습과 만난다.

적은 지분으로 수십여개의 계열사를 지배하는 오너, 투명한 회계와 경영에만 전념할 수 없도록 하는 정치권, 대기업의 손발을 묶는 각종 규제, 소액주주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경영….

특히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재벌은 사업지주회사만 인수하면 다른 계열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오는 매력이 있다.

이 구조를 꿰뚫어본 소버린은 SK그룹의 가장 취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와 적은 비용으로 2대 주주가 되는 데 성공했다.

정광선 기업지배구조개선지원센터 원장은 “한국기업들이 SK사태에서 교훈을 얻지 않는다면 곧 제2, 제3의 소버린이 등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왜 한국인가=먼저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취약성이 꼽힌다.

서강대 박영석 교수는 “상호출자로 엮어진 한국의 재벌 시스템은 소수의 오너가 그룹 전체의 자산을 통제하고 있어 오너만 물러나게 하면 적대적 M&A는 쉽게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벌의 강점이 약점도 될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재벌은 1970, 80년대 경제발전 과정에서 오너가 한 회사를 키워 사업지주회사를 만들고 이 회사가 자회사에 출자하는 방식으로 신규사업을 키워왔다. 또 지주회사가 유상증자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다보니 오너의 지분이 급격히 떨어졌고 계열사들도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로 엮여있다.

과거에는 한국사회가 이런 시스템을 대체로 수용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주주가치 개념이 도입되고 소액주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쉽게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기업의 정경유착과 오너의 개인비리 등이 불거지면서 국민의 신뢰가 약해진 것도 한 원인.

또 자본시장의 급격한 개방도 한몫했다.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외국인의 주식투자 한도에 대한 규제를 빠른 속도로 없앴다.

경영권 보호 장치도 97년 이후 대부분 폐지됐다. 기존 경영진이 회사를 잘못 운영하면 주주들에 의해 물러나도록 감시 또는 견제하기 위한 것.

특히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해 마련된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의도와 달리 적대적 M&A를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대안연대 정승일 박사는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한국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탐을 낼 만한 세계적 수준의 제조업체가 많다”며 “한국의 재벌은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적대적 M&A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왜 SK인가=삼성 LG SK 등 3대 재벌 가운데 오너의 지분이 가장 낮은 곳이 SK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소유지분과 영향력 행사비율간 차이(괴리도)는 삼성이 23.2%, LG가 26.1%인데 SK는 29.3%로 더 높다. 그만큼 소유구조가 취약하다는 뜻.

소버린이 SK㈜를 타깃으로 정한 가장 큰 원인은 검찰의 압수수색,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오너 구속 등의 사건이 겹치면서 주가가 5800원대까지 떨어지고 대주주 지분이 20%가 채 안 됐기 때문이다.

SK㈜는 국내 정유업계 1위 회사로 브랜드 인지도, 사업구조 등이 탄탄하지만 SK네트웍스의 대주주, 계열사 지원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작용해 주가가 떨어졌다. 따라서 이 고리만 자르면 주가는 오를 것이라는 계산 아래 소버린이 주식을 사들였다.

또 SK㈜가 보유 중인 SK텔레콤 주식을 일부 팔아 부채를 줄여 이자비용을 낮추겠다는 약속을 한동안 지키지 않아 투자자들의 신뢰가 약해진 점도 작용했다.

KDI 임영재 박사는 “SK㈜는 기업 내재가치가 높지만 시가총액이 너무 낮아 먹잇감이 된 것”이라며 “사업지주회사는 계열사 지원 때문에 자금운용이 비효율적이고 사업수익성이 낮아져 출자 고리만 끊어주면 주가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재벌들의 대응=적대적 M&A는 외국의 투자자들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금강고려화학(KCC)의 공격에 따라 방어전을 치르고 있다. 이 역시 주가가 낮고 대주주 지분이 25% 미만이라는 것이 약점으로 노출됐다.

소버린의 공격과 현대 및 KCC의 대립에서 교훈을 얻는 대기업들은 지난해부터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주식 매집에 나서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지주회사인 ㈜한화 주식을 사들여 개인 지분을 6.3%에서 무려 22.7%로 늘렸다.

현대자동차는 다임러크라이슬러(10.46%)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과 계열사인 현대모비스, INI스틸 등은 현대차 지분을 26%까지 높이기로 했다.

요즘 재계에서는 “적대적 M&A 방어에 신경을 쓰느라 경영에 전념할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박영석 교수는 “가장 강력한 경영권 보호 장치는 제도적인 보호가 아니라 경영자가 기업을 잘 운영해 주가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높게 유지되면 예상투자수익이 낮아 사냥감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

연세대 김준기 교수는 “한국의 회사법 체계에 영미법적인 요소를 적용하면서 주주권리 보호 장치가 강화됐다”며 “재벌들은 그룹경영 시스템의 효율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대 박찬희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주주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을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기업사냥꾼의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

―비(非)전문가의 독재와 보수적 성향에 의해 기업의 효율성이 낮고 자산 활용이

잘 안된다

―현금 등 유동자산이 풍부하고 부채비율이 낮다

―강력한 조직을 갖추고 판매망과 브랜드 파워가 강하다

―1대주주의 소유비율이 적고 기업의 인지도가 높다

―부동산 등의 자산가치가 낮게 평가돼 있고 자금조달 능력이 뛰어나다

―탁월한 기술과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이 높다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주식예탁증서(DR) 등

잠재주식 발행물량이 많다

―해외 및 국내에서 양질의 자금 차입이 가능하다

―1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내분으로 소유지분이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노사관계에서 불협화음이 많다

―사양산업에 속하지만 해외이전으로 경쟁력 회복이 가능하다

―조건이 좋은 자회사를 많이 갖고 있다

―기업가치가 관계회사로 이전돼 이를 차단하면 기업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

―친인척이 임원으로 있고 경비지출이 지나치게 많다.

자료:M&A와 기업탈취전략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