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2004]<4>탈출 한국 시대 새엔진

입력 2003-12-17 17:53수정 2009-10-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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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원 최모씨(29)는 최근 한 결혼정보업체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최씨가 내건 배우자의 조건은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최씨는 “한국 땅에서는 미래가 불확실해 국제결혼을 통한 미국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에는 ‘탈(脫)한국’ 바람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개인과 기업의 한국 탈출이 러시를 이루면서 불안심리가 확산되고 국내 제조업의 공동화(空洞化)가 한층 진전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재와 투자가 가뜩이나 부족한 한국 경제의 주름살도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해외로, 해외로=벤처기업 사장인 서모씨(42)는 1년의 절반 이상을 캐나다에서 보낸다. 올해 초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 그는 “입시 과열에 따른 사교육비 부담, 부동산값 폭등, 불안한 미래 등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버려 홀가분하다”고 밝혔다.

해외이주 열풍은 세대를 초월한 양상이다. 10대는 조기 유학, 20, 30대는 해외 명문대 유학, 중장년층은 이민에 나서고 있다. ‘40대 이민’도 이젠 옛말.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박람회에는 이틀간 1만5000여명이 몰렸는데 20, 30대가 70%였다. 교육문제 취업난 부동산파동 고용불안 등 불투명성이 젊은 세대를 ‘엑소더스’로 내몰고 있는 것.

손쉬운 해외이주 방법으로 국제결혼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여성들의 국제결혼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문직 남성들이 백인 여성이나 교포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업들도 ‘탈한국’ 러시=기업들의 ‘탈한국’ 바람은 더욱 거세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앞다퉈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장을 운영해서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중국행을 따져봤더니 당장 생산원가를 30% 이상 낮출 수 있더군요. 공장부지와 건물도 무료로 받고요.” 전자부품 생산업체를 운영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이 털어놓은 중국행의 이유다.

스포츠용품 생산업체로 1995년 중국에 진출한 A사는 최근 칭다오(靑島) 공장을 3배로 늘렸다. 한국 본사는 연구개발(R&D)만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생산직 기준으로 한국 직원 월급이 중국의 10배”라며 “생산성 향상을 위해 중국 진출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 제조업의 해외 투자건수는 지난해 1800여건.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는 올해 상반기 8억4000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해외 이전 업종도 섬유, 의류 등 경공업 위주에서 휴대전화 컴퓨터 등 첨단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대안은 새로운 성장엔진=자국 기업과 국민도 외면하는 판에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가 늘어날 리 없다. 최근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 425개사 가운데 6.6%가 3∼5년 내 투자 철수를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및 자본의 해외유출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제조업 공동화다. 급격한 제조업 공동화는 고용감소, 성장잠재력 약화 등 경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전문가들은 새로운 성장엔진 발굴로 제조업 공동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경제 자원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 투자환경과 교육제도 등의 획기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재윤 수석연구원은 “신산업을 조기에 육성하고 서비스업 고도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안충영 원장은 “산업공동화를 피하려면 한국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굴하고, 저부가가치 산업은 중국에 맡기는 산업 분업 모델을 빨리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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