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시장개혁 로드맵']“현실 무시한 잣대로 족쇄 채우나”

  • 입력 2003년 10월 30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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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시장개혁안에 대해 재계는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하면서도 “정책 자체가 모순이 많고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적인 발상이 많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우선 정부의 ‘의결권 승수가 높은 기업은 지배구조가 나쁜 기업’이라는 도식은 한국 대기업의 진화과정을 무시한 것이며 기업지배구조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신종익 상무는 “정부 논리대로라면 대주주 지분이 많은 벤처기업은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이고 최대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나쁜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각종 외국투자기관은 삼성전자를 지배구조 우수기업으로 매년 평가하고 있다.

학계와 선진국에서도 좋은 기업지배구조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아직 없는 상태. 30일 주한프랑스 대사관저에서 열린 ‘한불 경제전략 위원회’에서 프랑스 파리의 HCE경영대학원 자크 그라베로 원장은 “기업지배구조는 문화적 배경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고정화된 것이 아니라 진화과정에 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미국 및 유럽은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업지배구조를 따르기보다 문화적 특성에 맞는 시스템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스웨덴 핀란드 독일 등 유럽에서는 경영권 안정과 국부유출을 막기 위해 아예 ‘차등의결권주식 발행제도’를 도입했다. 에릭슨의 경우 창업주가 최고 1000배까지 의결권을 행사한다. 미국의 포드사 대주주도 자신의 주식 지분(7%)의 16배에 해당하는 4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정부정책의 일관성이 없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은 정부가 1995년 ‘대주주 지분을 4%이하로 낮추면 인센티브를 준다’는 소유분산 정책에 따라 대주주 지분을 낮춰왔는데 정부가 이제 와서 지분과 의결권의 괴리도가 높다며 재벌을 몰아세운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시민단체들은 출자규제 예외인정 조항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며 이번 시장 개혁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경실련 위평량 국장은 “공정위가 실제 이 같은 개혁안을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대기업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홍찬선기자 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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