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제 전망]내수침체 수출로 극복…하반기 호전기대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7시 58분



올 2월 정식으로 출범하는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경제측면에서 그리 좋은 여건에서 출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 정부 중반까지 경기를 떠받쳐왔던 내수경기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고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불안감도 갖고 있다. 올해 국내경제 현안을 5대 이슈로 묶어 전망한다.

올해 한국 경제는 ‘상약하강(上弱下强)’ 의 모습을 보일 전망이다. 즉 상반기에는 지난해의 침체가 이어지다가 하반기 들어 살아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올해는 내수보다 수출이 탄력을 받아 경기를 버텨줄 것이라는 기대가 강하다. 하지만 차기 ‘노무현 정부’가 임기 초 대기업 분야에 대한 강한 ‘개혁 드라이브’에 나서 기업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수출 및 경상수지〓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내수경기 침체가 올해까지 이어질 전망. 이런 침체 분위기를 막아줄 버팀목이 수출이다. 내수의 침체를 수출이 얼마나 상쇄하느냐에 올 한해 경기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출여건에는 낙관과 비관적 전망이 섞여 있다. 내년 수출증가율(통관기준)이 대체로 7∼8%로 예상되지만 예측기관에 따라 6%중반에서 10%를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낙관적인 여건은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완만하게 회복세를 탈 것이라는 부분. 특히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힘찬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의 선전(善戰)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라크 전쟁과 미국 경제의 이중침체(더블딥) 가능성, 중남미 금융위기 등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불안요인도 적지 않다.

내년 경상수지는 수출증가세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 등에 따른 서비스수지 적자가 늘어나 흑자규모가 올해 80억달러 수준의 절반을 밑돌 전망이다.

▽가계대출 및 재정악화〓지난해 국내 경제의 최대 악재 가운데 하나가 가계대출 급증과 이에 따른 신용불량자 속출. 지난해 9월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424조3000억원. 개인 신용불량자는 11월말 현재 257만명이나 된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상무는 “시장금리가 1% 포인트 오르면 이자부담이 4조원 증가하는 등 가계부채의 잠재적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억제대책으로 가계대출 급증세가 한풀 꺾인 것은 다행이다.

문제는 속도조절. 지나치게 가계대출의 돈줄을 죄면 오히려 신용불량자를 양산(量産)하고 금융권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문제는 새로운 정부가 시작하는 내년에는 더욱 눈여겨봐야할 부문이다. 기획예산처는 올해는 균형재정으로 돌아서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선심성 공약이 많은데다 임기 초부터 긴축재정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는 것도 부담이다. ‘내채(內債)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게 한 가계부채 급증 및 재정악화는 올해도 한국경제를 짓누르는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업투자심리〓내년 기업의 투자심리는 경제적 상황과 함께 차기 정부의 정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재벌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 경우 국내 설비 투자를 주도하는 대기업들의 투자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을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차기 정부 출범에 따른 경제외적 요인을 제외한다면 올해 설비투자 전망에 대해서는 시각이 다소 엇갈린다.

한국은행은 올해 설비투자는 상반기에는 지난해 연평균 6.5%보다 다소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하반기에는 두 자릿수 이상 올라갈 것이라는 다소 장밋빛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삼성그룹이 지난해의 6조5000억원보다 2조3000억원(35%) 많은 8조8000억원을 올해 시설투자에 쏟아 붓겠다며 활발한 투자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사정은 삼성과 다르다. 지난해 말 전경련이 국내 매출액 상위 50대 기업을 대상으로 올해 설비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62.9%가 지난해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해보다 늘리겠다고 대답한 비율은 25.7%에 그쳤다.

재계 서열 2위인 LG그룹은 올해 설비투자액을 4조8000억원으로 예상, 지난해의 5조1000억원보다 오히려 6% 줄여 잡았다.

‘재벌은 재벌이고 대기업은 대기업’이라는 노무현 당선자의 말이 실제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산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이 될 것이 틀림없다.

▽기업 구조조정 및 공기업 민영화〓하이닉스반도체와 현대투신 매각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 및 부실기업의 처리가 해를 넘겨 올해의 주요 과제로 남게됐다.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 가스공사의 민영화도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차기 정부는 ‘상시적인 구조조정 시스템구축’과 ‘부실기업의 조기 정리’라는 원칙을 유지하면서 시장원리에 맡긴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매각소위에서 신한금융지주로 일단 우선협상대상자가 정해진 조흥은행 매각건은 가속도가 붙은 상태다.

다만 조흥은행 노조와 금융산업노조가 정부가 무리하게 매각절차를 서두르면 강경대응하겠다고 반발하고 있어 최종 매각까지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한전과 가스공사 민영화 문제도 노조와의 마찰 등의 영향으로 늦어지고 있다. 막강한 노조가 버티고 있는데다 이해관계자가 워낙 많아 정치권도 선뜻 나서지 않아 올해중 곧바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 많다.

▽노사문제 및 복지분배〓 차기 정부에서 힘이 상당히 붙을 것으로 예상되는 세력 가운데 하나가 노동계다. 노 당선자는 상대적으로 기업보다는 노조측의 요구사항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진보적인 노동세력인 민주노동당도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정치 세력화’에 성공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차기 정부는 노사정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고 주5일 근무제 조기도입을 추진할 전망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높아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정책에 대한 단초가 임기 초에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 노동의 유연성 부분에서도 노 당선자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예를 들면서 오히려 지나치게 높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재계가 반발할 것으로 보여 올해 노사관계는 삐걱거릴 가능성이 높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올해 최대의 현안은 7월로 예정된 건강보험의 직장 및 지역 통합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대다수 봉급생활자가 반대하고 있어 어떻게 결말이 날지 주목된다.

의료비 지원확대, 노령연금 도입 등 사회복지 혜택 확대는 재정여건과 직결되는 문제여서 정부 부처 내에서도 상당히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김광현기자 kkh@donga.com

▼안정기조속 경제성장률 5.3~5.8% 예상▼

2003년 한국 경제의 주요 경제지표 전망치는 맑지도 흐리지도 않다. 연구기관들은 올 경제가 2002년보다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일단 내다봤다.

경제성장률 경상수지 등은 2002년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눈에 띄게 나빠지는 지표도 없다. 모든 기관이 상반기가 하반기보다 나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연간 경제 성장률〓지난해 6.1%보다 약간 둔화된 5.3∼5.8%로 전망됐다.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악재를 고려하면 최저 5.3%의 성장률 전망치는 그리 나쁘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성장세는 한풀 꺾였다. 민간 소비와 건설 투자가 움츠러들었다. 이 추세는 올 상반기에도 지속될 전망.

선진국 경제의 미약한 회복세와 유가 급등 가능성 등 불안 요소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LG경제연구원은 올 성장률을 지난해 7월 6.2%로 예상했다가 연말에 5.6%로 낮췄다.

여러 악재에도 5%를 웃도는 안정된 성장 전망은 수출과 설비투자 덕분이다.

연구기관들은 상반기에는 수출 증가, 하반기에는 설비투자 회복이 성장을 이끌 것으로 내다봤다. 국책 연구기관보다는 민간 연구기관이 더 높은 성장을 전망한 것도 눈길을 끈다.

▽경상수지〓2002년의 60억∼70억달러 흑자보다는 경상수지가 나빠진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은행과 삼성경제연구소가 30억달러와 19억달러의 흑자를 예상했지만 LG경제연구원 등은 소폭의 적자까지 내다봤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해 8월 2003년 경상수지를 59억달러 흑자로 예상했다가 연말 6억달러 적자로 전망했다. 수출은 10% 안팎의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 반도체 휴대전화 등 정보기술(IT) 분야의 수출이 늘고 있는 까닭이다.

수출이 느는데도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것은 수출용 수입의 확대, 유가 불안,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자본재 수입 증가 때문으로 분석됐다.

▽설비투자〓두 자릿수를 웃도는 증가율이 기대된다. 하반기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수출 증가도 설비투자를 늘리는 요인.

기업의 여유 자금이 풍부하고 2년 이상 투자가 부진했던 점을 고려하면 하반기에 눈에 띄게 설비투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물가〓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의 2.7%보다 다소 높은 2.9∼3.2%선에 이를 전망. 매년 임금이 10% 남짓 오르고 국제 원자재 값도 올라 물가 상승 압력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내수가 크게 둔화돼 물가가 뚜렷이 오르지도 않을 전망이다. 국내외 경기가 회복될 하반기에 물가가 오를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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