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기업 투명하게 공개해야 믿음 얻어"

  • 입력 2002년 12월 31일 16시 46분


신세계 구학서 사장(왼쪽)과 고려대 문형구 교수가 ‘신뢰경영과 기업윤리’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믿음있는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철민기자
신세계 구학서 사장(왼쪽)과 고려대 문형구 교수가 ‘신뢰경영과 기업윤리’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는 믿음있는 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철민기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이를 통한 ‘신뢰경영’이 최근 경제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작년에 윤리적인 기업으로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는 데 매우 성공한 것 같습니다.”(고려대 경영학과 문형구!?文炯玖 교수)

“기업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얼마 전 고려대 기업윤리 강좌에서 강의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영을 하다보면 윤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대학에서 경영의 전문지식뿐 아니라 윤리를 가르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신세계 구학서·具學書 사장)

1999년부터 신세계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신세계를 한국 기업 가운데 윤리경영의 대표기업으로 키워낸 구 사장과 고려대에서 기업윤리 강의를 맡고 있는 문 교수가 새해를 앞두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문형구 교수〓신세계가 윤리경영의 대표기업으로 떠오르면서 다른 기업의 시샘을 받지는 않습니까? 다른 기업들의 시선 때문에 혹시 윤리경영을 얘기하는 게 좀 불편하신 것 아닌가요.

구학서 사장〓윤리경영을 얘기하는 것이 하나도 불편하지 않습니다(웃음). 물론 우리만 ‘고고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 많이 했습니다. 협력업체와의 관계에서도 우리만 앞서가면 다른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윤리경영하면서 어떻게 이익을 내느냐’는 반발도 있었지요.

문〓윤리경영이나 신뢰경영을 얘기하려면 당연히 ‘글로벌 스탠더드’를 먼저 살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세계 경제를 흔들었던 미국의 엔론사태도 결국 기업의 불투명성, 비(非)윤리성에서 시작된 것 아니겠습니까.

구〓기업의 관행을 세계적 기준에 맞춘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문〓한국 기업들이 윤리경영을 도입하는 대표적인 이유들을 꼽아 본다면 첫째는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다는 모방심리, 둘째는 정부의 규제에 대한 대항논리, 셋째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니까 흉내내는 것 세 가지 정도인 것 같습니다. 신세계는 이런 기업들과 달리 유통기업으로서 내부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됐다는 점이 달라 보입니다.

구〓나는 기업인입니다. 결국 ‘기업윤리가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하려는 것입니다. 다른 기업이 하니까 따라 하는 식으로는 윤리적인 기업을 만들 수 없습니다. 회사가 강한 의지를 갖고 그 의지를 사원들에게 전달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문〓신세계는 이미 윤리경영에서 일정수준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현재 신세계의 윤리경영 수준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 정도 주시겠습니까?

구〓아직도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라고 봅니다.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한국 기업들의 일반적인 수준이 30∼40점 수준이어서 상대적으로 우리가 나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윤리경영을 이룩하려면 앞으로 더욱 노력해야 하겠죠.

문〓윤리경영을 추진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 사장께서 ‘호주머니 돈’으로 골프를 치는 원칙을 고수하는 바람에 신세계 임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신세계 임원이 추석에 집으로 보내온 협력업체 관계자의 선물을 보고 ‘나 회사 그만두면 책임지겠느냐’며 돌려보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구〓까다로운 사장을 만난 임원들에게 좀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신세계에서 간부들 인사고과의 첫 번째 항목이 ‘윤리’입니다. 윤리적 하자가 있다면 당연히 승진에서도 탈락합니다. 윤리적인 임직원을 격려하고 잘못한 사람을 꾸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윤리경영은 기업이 혼자 해나갈 수 없는 것이 큰 어려움입니다. 정치권 공무원 사회풍토 등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제대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문〓한국 기업이 신뢰경영을 하는 장애물로 ‘오너 중심의 지배구조’ 문제도 거론됩니다. 구 사장님 같은 전문 경영인이 신뢰경영에 대한 의지를 갖고 ‘오너’는 이를 밀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요. 하지만 아직도 한국의 대기업에는 오너의 ‘가신(家臣)’이라는 용어가 남아있지 않습니까.

구〓글로벌 경쟁을 하는 상황에서 ‘가신’은 이미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부작용도 있었겠지만 한국식 지배구조는 고도성장기에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도록 해 한국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신세계의 윤리경영은 오너의 전폭적인 지지와 모범이 밑바탕이 됐습니다. 할인점 사업에서 부지를 사들이는 등의 중요한 결정도 모두 전문 경영인이 최종적으로 책임집니다. 오너에게는 사후에 보고하는 정도지요.

문〓이제는 잘못된 것을 고치자는 소극적 차원의 윤리경영에서 진정으로 신뢰받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신뢰경영’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윤리경영이 문제점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고치는 것이라면 신뢰경영은 잘 하는 부분을 칭찬하고 격려해 조직 내부와 외부의 신뢰를 얻어가는 과정입니다.

한국 기업의 윤리헌장은 대부분 고객을 가장 중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조직 내부의 사람들이 일하기 편한 직장을 만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리헌장이 조직원에 대한 통제 메커니즘이 될 때 신뢰경영은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구〓그렇습니다. 윤리경영이나 투명경영이다 하는 것 모두가 소비자와 주주, 종업원으로부터 신뢰를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자(CEO)나 종업원이나 모두 투명해져야 합니다. 기업의 모든 경영정보가 대외적, 대내적으로 투명하게 알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 방침에 따르면 직원들에게도 득이 된다는 것을 종업원들이 느끼게 해야 합니다. 종업원과 회사가, 협력업체와 우리 기업이 서로에게 득이 된다는 것을 믿게 되는 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담자 프로필●

구학서 사장

△1946년 경북 상주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삼성그룹 입사, 삼성전자 관리담당 이사

△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 신세계 대표이사(현)




문형구 교수

△1954년 경남 진주 출생

△서울대 영문과 졸, 연세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 경영학 박사

△전주대 경영학과 교수,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현)

△2002년 전경련 기업윤리협의회 자문교수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사회공헌 큰기업 돈도 더 잘번다▼

‘수익극대화만을 추구하는 기업’과 ‘신뢰경영을 병행하는 기업’ 중 어느쪽이 더 돈을 잘 벌까? 정답은 신뢰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연세대 경영학과 박헌준 교수가 한국 288개 상장제조업체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회적 공헌도가 높은 기업들이 그렇지 않은 기업들보다 좋은 실적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건전하게 활동하고 근로자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받는 행동을 할 때 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고 부채비율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제조업체만을 분석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금융기관 등 서비스 산업에 속한 기업들에도 같은 결과가 적용된다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소비자를 직접 대하는 서비스업체들에 사회적 평판의 중요성이 결코 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연합 부설 경제정의연구소는 지난 10년동안 ‘경제정의지수’ 상위 100대기업을 발표해왔다. 여기서 경제정의지수는 기업활동의 건전성(20점), 공정성(10), 사회봉사 기여도(10), 환경 기여도(10), 고객만족 기여도(7), 종업원 기여도(15), 경제발전 기여도(28) 등 7개 평가항목으로 구성된다. 한국유리공업, 삼성전자, 포항제철, 대덕전자, 한일시멘트공업, 유한양행, 한미약품, 퍼시스, 태평양 등 우량기업들이 대상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97년 외환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한보철강이 경제정의지수 평가에서 최하위권에 머물러왔다는 사실. 한보철강은 경실련의 1993년 458개사 조사에서 458위였고 94년에는 최하위 10개사 중 하나였다.

덕성여대 회계학과 김성은 교수는 저서 ‘투명성’에서 외환위기에 이르게 된 이유의 하나를 기업과 국가정책의 투명성 부족에서 찾고, 향후 한국경제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과제도 투명성 강화라고 지적했다.

기업이 신뢰받는 경영을 해야 할 이유는 투자자와의 관계를 볼 때도 분명하다. 영국은 1999년 연금법 개정을 통해 민간연금펀드들이 투자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사회·환경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명문화시켰다.

미국의 연금펀드도 한국의 주요기업들에 대해 자료를 축적하면서 사회적 평판이나 노동관련 법규 준수 등을 고려사항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보다 직접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유리한 게 현재의 금융환경이다.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기업이 ‘이익추구 이상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결국 이익추구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기업들은 이런 현실에 직면해 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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