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포럼 '윤리강령' 선언]주용내용과 의미

  • 입력 2002년 9월 15일 17시 45분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CEO콘퍼런스에서 윤병철 회장(앞줄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강석진 회장.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CEO콘퍼런스에서 윤병철 회장(앞줄 오른쪽)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강석진 회장. <서귀포=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
“우리는 오너의 ‘머슴’이나 ‘가신’이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런 단어는 없어져야 합니다. 대신 오로지 주주만을 섬기는 전문경영인이 되자는 겁니다. 투명경영, 주주중심 경영, 지배구조 선진화 등이 그 수단이지요. 그것이 참된 최고경영자(CEO)입니다. 이 같은 경영이 정착되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누굴까요.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이른바 오너예요.”(강석진 GE코리아 회장)

“우리 CEO들은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스스로 반성하면서 아울러 향후 CEO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한국CEO행동윤리강령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주주중심 경영체제의 확립, 공정한 경쟁질서의 창출, 소비자와 근로자 등 이해관계자와의 공존공영, 새로운 리더십과 가치창출 등이 우리가 할 일이지요.”(윤병철 우리금융그룹 회장)

한국의 대표적인 CEO 100여명이 모여 주주가치중시,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선언했다. 한국CEO포럼(공동대표 윤병철·강석진·전광선 중앙대 교수)은 14, 15일 제주 서귀포시 신라호텔에서 ‘제1회 CEO콘퍼런스’를 열고 정직하고 투명한 기업경영 문화를 정착시킬 것을 다짐했다.

CEO포럼이 탄생한 것은 작년 6월. 여러 차례의 세미나와 행동윤리강령 마련 등 1년여의 ‘내부 다지기 과정’을 거친 후 100여명의 회원이 모이는 첫 콘퍼런스를 연 것이다.

CEO포럼의 간사직을 맡고 있는 곽만순 가톨릭대 교수(경제학)는 포럼의 출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156조원의 공적자금이 금융기관에 투입되는 과정을 지켜 본 많은 CEO들은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CEO들이 경영을 잘못해서 국민에게 이런 부담을 지운 것이다. 경영을 잘못한 것도 있지만 부당하게 챙긴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CEO가 회사돈 10억원을 빼돌리려면 기업에는 100억원, 1000억원의 부담을 주게 된다. 그래서 천문학적 규모의 공적자금이 필요해진 것이 아닌가.’ 이 같은 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CEO 문화를 정착시키고 주주를 올바로 섬기는 CEO가 되자는 취지로 이 모임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홍성일 한국투자신탁증권 사장은 “CEO포럼은 또한 모험·창의·혁신이라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주제로 한 국내 최초의 CEO 모임”이라고 설명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나 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있지만 이들은 동일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체인 반면 CEO포럼은 오직 기업가정신을 올바로 세우고 확산시키자는 뜻으로 출범했다는 점에서 대비된다는 것.

이들의 행동윤리강령은 모임의 취지를 간결하게 압축하고 있다. 요약하면 △기업가치의 극대화 △이해 관계자와의 공동번영 △사회적 책임 준수 △정직 성실의 추구 △투명경영의 실천 △윤리경영과 공정경쟁 추구 △지배구조와 경영체제의 선진화 △경영혁신과 인재양성 등.

이날 모임에는 윤병철 회장, 강석진 회장, 신재철 한국IBM 사장,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벤처기업협회 회장), 유상옥 코리아나 회장, 심갑보 삼익LNS 사장,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 양승우 안진회계법인 대표,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송태준 한국신용평가정보 사장, 남승우 풀무원 사장,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등이 참석했다.

▼한국도 디플레 가능성▼

한국도 일본이나 대만처럼 디플레이션에 빠질 것인가.

14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CEO 콘퍼런스 회의’에서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이 한국에서도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날 첫 주제발표에 나선 모건스탠리 홍콩법인의 앤디 셰 이사는 “한국은 물가상승률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며 “중국 홍콩 일본 대만 등 주변국들이 겪고 있는 디플레이션이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모건스탠리의 아시아시장 분석을 총괄하고 있는 그는 “한국은 지난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물가가 상승했지만 부동산 경기가 진정되면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자동차 반도체 등 일부 제품가격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고 수출물가가 계속 하락하는 등 제조와 수출 부문에서 디플레이션 위협이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대부분 디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고 중국 등의 저가(低價) 공세에 맞서 한국도 수출가격을 계속 낮출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경제가 일단 디플레이션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금리를 내려 디플레이션 압력을 막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셰씨의 ‘디플레이션 위험론’은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CEO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에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며 “지적재산권을 창출하는 기업이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이길 수 있다”고 답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뒤이어 주제발표를 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팀장 조동철(曺東徹) 연구위원은 “디플레이션 우려는 과장된 것”이라며 셰씨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제조부문에서 일부 제품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이 디플레이션에 빠져들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지적.

조 연구위원은 “제조부문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에 불과하며 제조부문보다 비중이 훨씬 큰 서비스 부문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은 환율 변동이 대외 변수의 충격을 흡수하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릴린치증권 홍콩법인 김헌수 리서치 헤드도 “한국도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당장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조 위원과 같은 의견을 보였다.

디플레이션은 물가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현상으로 기업 이윤 감소→실업 증가→소비 위축→물가 하락의 악순환을 불러와 경기회복을 지연시킨다.

▼앤디 셰 모건스탠리 이사 "중국진출 뒤지면 경쟁서 못이겨"▼

“내수시장을 보호하고 수출을 늘려 성장하는 일본식 성장모델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습니다. 앞으로는 자국 시장을 개방하고 외국기업과의 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쌓아가는 중국식 성장모델이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모건스탠리 홍콩법인에서 아시아시장 분석을 총괄하고 있는 앤디 셰 이사는 “앞으로 중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14, 15일 서귀포시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회 CEO 콘퍼런스’의 주제발표자로 초청을 받아 방한한 그는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 ‘기회의 땅’이며 중국의 싼 임금과 높은 노동생산성을 활용하지 않는 기업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중국이 현재의 견고한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고학력의 노동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

“1970년대 중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은 100명 중 1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0명 중 1명이 대학에 갑니다.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일본 기업들은 중국인이 일본인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다고 인정하지요. 일본인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일하지만 중국인은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미 뉴욕증시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5000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조정을 거칠 것”이라며 견해를 같이 했다.

미국경제의 ‘더블 딥’(경기가 반짝 회복한 후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투자자나 기업에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의 성장이 앞으로 3, 4분기 동안 저조할 것이라는 점”이라며 “특히 아시아의 수출기업들은 미국으로의 수출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으니 미리미리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해 “아시아에서 가장 경제사정이 좋은 편”이라며 “금융부문이 건전하기 때문에 대출을 늘려 소비를 촉진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진단했다.

서귀포〓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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