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진단]김상철/신용불량 구제남발 ‘不信카드’ 될라

  • 입력 2002년 7월 17일 18시 06분


김상철·경제부
김상철·경제부
월드컵은 페어플레이어는 박수를 받지만 룰을 어긴 선수는 즉시 레드카드를 받아 퇴장된다는 교훈을 남겼다.

정부가 최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운전면허가 정지되거나 벌점을 받은 교통사범 481만명을 사면했다.

월드컵 때 국민이 보여준 단합된 질서의식을 국민화합과 국운 융성의 계기로 삼기 위해 이처럼 조치했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사면된 교통사범 가운데 일부는 무면허 상태에서 면허증을 받기 위해 버젓이 승용차를 몰고 나타났다. 이 조치 후에 신호위반 등 비교적 가벼운 위반으로 단속되는 운전자 중에는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뭐가 문제냐며 경찰관에게 대드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준법의식이 땅에 떨어지면서 음주운전이나 뺑소니 같은 반(反)인륜적인 행위를 한 교통사범까지 사면했어야 하느냐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거세다.

한편 신용카드사들도 7월부터 신용불량자를 구제하기 위해 개인 워크아웃(신용회복 지원)에 본격 나섰다.

회사별로 지원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원금 납부유예 또는 분할상환, 연체이자 탕감 또는 일부 감면, 종전보다 낮은 이자율 적용 등 파격적이다. 이번 조치로 종전에 카드대금을 3개월 이상 연체해 신용불량자가 된 110만명 가운데 50만명 정도가 올해 안에 신용을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카드사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 금융당국이 이를 내부규정으로 만들어 시행하라고 사실상 지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카드사에는 자신을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는 전화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왜 자신을 대상에 넣지 않았느냐고 적반하장격으로 나무라기도 한다. 신용을 잃어도 때가 되면 회복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심해지면서 이 제도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신용불량자의 상당수는 이미 한 번 신용사면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는 말 그대로 카드 소지자의 신용상태를 입증하는 증표다. 신용은 자신이 오랜 시간 노력해 만드는 것이지 정부가 더하거나 빼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정부와 카드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한 번도 교통법규를 어기지 않았거나 카드대금을 연체하지 않은 다수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룰을 어긴 교통사범이나 신용불량자를 구제하는 것은 정작 우대를 받아야 할 ‘법 없이도 사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김상철 경제부기자 sckim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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