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약인가 독인가]<下>신용붕괴 대책없나

  • 입력 2002년 5월 19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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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K씨(39)는 96년 근무지인 독일에 도착한 뒤 드레스트너방크에 2만마르크(당시 약 1000만원)를 입금한 뒤 신용카드를 신청했으나 발급을 거절당했다.

폴커마르 펠처 지점장은 “아직 신용 상태를 모르니 돈을 꺼내 쓸 수 있는 현금인출카드만 만들어줄 수 있다”며 “거래하면서 신용을 쌓아야 신용카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K씨는 6개월 이상 은행을 이용하면서 거래내용과 평균잔고 등 신용상태를 평가받은 다음에야 월 사용 한도가 30만원인 최하위 등급의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올 3월말 현재 발급된 신용카드 8900만장의 21.3%에 달하는 1900만장 이상이 1년 이상 사용되지 않은 ‘휴면카드’이다.

▼글 싣는 순서▼

- <上>흔들리는 '신용사회'
- <中>신용사회의 그늘

▽신용평가가 없다〓국내 카드사들의 카드 남발은 ‘제대로 된 신용평가가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소득이 없는 대학생이 부모의 동의서를 가짜로 만들어도, 무직자가 친구 사무실의 전화번호를 연락처에 적어 놓아도 형식적인 ‘전화 한 통’이 고작이었다.

카드발급은 수백만원대의 현금서비스 권리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신청자가 다른 금융기관에서 얼마나 빚을 얻어 썼는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런 통합시스템은 올 7월에야 비로소 가동된다.

현재 개인은 25개 카드사나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25장까지 만들 수 있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박사는 “이런 중복 발급은 한 번 밀린 소액의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다른 카드를 만드는 속칭 ‘돌려막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카드사들은 결제일을 5일 이상 넘기고 10만원 이상 연체된 고객의 정보를 교환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신용불량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신용평가 출발선에 선 카드사〓삼성 LG 현대 동양 우리 등 5개 카드사는 올해 초 개인의 신용상태를 평가하기 위해 개인신용정보회사(CB·Credit Bureau)를 설립했다. 카드사 외에 한빛 조흥 제일 등 3개 은행, 삼성 현대 대우 코오롱 쌍용 연합 등 6개 캐피털회사, 한솔 현대스위스 등 2개 상호저축은행이 창립 멤버다.

참여 금융사들은 29일부터 3개월 이내 단기연체 사실 등을 CB에 넘겨주고, 2003년부터는 대출 관련 모든 정보를 서비스할 예정이다. 금융연구원 김병덕 박사는 “금융회사들이 고객관련 정보를 CB에 제공하고 분석된 고객 신용보고서를 받아 대출한도 대출승인여부 금리 대출기간 등을 정하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카드사가 신청자의 금융기관 거래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면 부적격자에 대한 카드 발급이 대폭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정부는 카드발급수와 현금서비스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3월부터 거리 모집을 금지시켰고, 7월부터는 방문 모집도 규제하기로 했다.

2003년 말까지 현금서비스와 신용판매의 비중을 1대1로 맞추도록 한 결정도 마찬가지. 금융감독위원회 이두형 국장은 “이렇게 되면 카드사는 신용에 따른 현금서비스 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김병태 팀장은 정부 정책과 함께 가정과 학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팀장은 “부모가 매달 일정액을 통장에 넣은 뒤 그 이상은 쓸 수 없는 직불카드를 통해 용돈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자녀에게 카드 사용법을 가르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고금리의 신용카드 대출을 저리의 은행 대출로 전환해 신용불량자 양산을 막으면서 대출금을 회수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상철기자 sckim007@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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