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드 권하는 사회 '신용불량' 짙은 그늘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9시 22분


▽우울한 조짐들〓9월말 현재 국내 카드회사의 현금서비스 매출액은 93조1897억여원. 지난해 말 48조3146억원에 비해 93%가 늘어난 규모다. 전체 신용카드 매출액(147조7293억원·누계)중 현금서비스의 비중도 같은 시기 53.2%에서 63.1%로 높아졌다.

통상 경기가 악화되면 ‘현금서비스와 할부구매가 늘고 부실채권이 증가하다가 카드이용액 자체가 줄어드는’ 사이클이 반복된다는 게 업계의 정설.

또 신용카드 연체율이 9월 현재 4.88%로 지난해 말부터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긴 하나 연체율 증감은 6개월 전의 경기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올해 말부터 가파른 상승세로 돌아설 게 분명하다는 것.

신용불량자도 급증하는 추세. 10월 현재 역대 최고치인 238만2717명으로 국민 20명당 1명꼴로 신용불량자다.

이렇게 IMF 직후 20%까지 이르던 연체율이라는 악령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개인은 무더기로 신용사회에서 ‘퇴출’되고 카드업계 역시 부실에 휩쓸리는 악몽이 가시화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Y대 1년생 김모씨(19·여)는 신용카드를 5개나 갖고 있다. 대부분 월간 사용한도가 230만원 안팎인데다 현금서비스액도 50∼140만원이어서 대학생에겐 ‘대단히 큰 규모’다. 김씨는 “안 쓰려 해도 자꾸 쓰게 된다”며 “한 고교 동창생은 신용카드 빚을 갚기 위해 최근 룸살롱에 나갈 정도”라고 털어놨다.

올 들어 정부의 카드장려책에 힘입어 카드수는 지난해 말 3888만여장에서 9월 현재 5256만장으로 35%(사용액 기준 63%)의 폭발적 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나 카드회사들이 높은 신용카드 이자율(16.5∼29%)을 노려 대학생, 실직자 등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고 정부도 ‘신용사회’를 지향한다는 방침 아래 신용서비스 한도액을 폐지하면서 ‘잠재 부실’을 키워 온 것이 사실.

금융감독원의 ‘여신전문금융회사 감독규정’ 가운데 ‘18세 이상 소득이 있는 자에게 각사의 발급기준에 의거, 발급해야 한다’는 조항을 카드회사들이 자의적으로 해석, 카드를 남발해 온 것.

YMCA 시민중계실 서영경(徐瑩鏡)팀장은 “무분별한 카드사용자들과 함께 시장선점을 위해 무차별 과잉여신을 주도한 카드회사들, 그리고 경기의 흐름을 짚지 못하고 서비스 한도를 폐지한 정책 당국 모두가 ‘신용 위기’의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대책은 없나〓잘못된 카드 사용의 1차 책임은 사용자 자신에게 있다. 때문에 신용불량자로서 받는 취업 또는 생활상의 어려움 등은 당연한 것.

그러나 앞으로 우려되는 신용대란의 책임을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만 돌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뿐더러 사회적 비용도 너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은 지적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장수태(張壽泰)법무보험팀장은 “채무자들의 재기를 위해 소비자파산제도 전반의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선진국처럼 채무자 스스로 계획을 세워 채무를 변제하고 갱생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갱생원조 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하고 카드사들의 카드남발도 규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헌진기자>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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