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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7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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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일본 미쓰비시가스화학 등과 50대50 합작으로 KEP를 설립할 때 55억원을 출자했으니까 12년만에 20배로 불린 셈. 다른 중견그룹과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야할 처지였던 효성 입장에서 1100억원의 매각대금은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외국 협상파트너들이 현금이 아쉬운 한국 기업들의 약점을 간파해 값 후려치기 에 나섰을 텐데 어떻게 이런 거래가 가능했을까.
▽ 효성, 알짜기업 매각에 나서 = KEP는 자동차 등의 부품으로 쓰이는 폴리아세틸 수지를 생산하는 업체. 국내시장의 65%를 점유하고 있는 우량기업이다.
효성은 KEP가 매년 100억원대의 순이익을 냈지만 핵심사업이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과감히 50% 지분과 경영권을 매물로 내놓았다. 일본 합작사를 포함해 7개 외국업체가 협상에 뛰어들었다.
▽ 솔직하게, 원칙대로 협상 = 효성이 KEP를 팔아야 할 처지에 몰렸다고 생각한 일부 업체들은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다. 협상은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1년 7개월간 지루하게 계속됐다.
전세계 폴리아세틸 수요의 40% 이상을 공급하고 있는 셀라니즈사가 아시아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관심을 보였다. 효성은 KEP의 약점도 솔직하게 소개했다. 이 회사는 당시 듀폰사와 지적소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김전무는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 털어놓으니까 상대방도 서로 믿고 일해보자 는 반응을 보이더라 고 말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주채권은행은 당시 자산매각 등 가시적인 구조조정 성과를 보여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협상사실 자체를 비밀로 해달라고 요구한 상태여서 채권단을 설득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김전무는 일단 협상에 나서면 시간의 노예 가 아니라 주인 이 돼야 한다 며 매각시한에 쫓기는 순간 협상은 지게 된다 고 말했다.
▽교훈은… =효성의 경험담은 대우차 매각협상이 왜 실패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문가들은 △매각시한을 미리 정한 것과 △정부측이 매각 희망가격을 공표한 것을 대우차 매각의 치명적 패착으로 꼽았다.
전문가 A씨는 시한이 임박할수록 값이 내려갈텐데 누가 서둘러 사겠느냐 고 반문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포드가 입찰에서 70억달러를 써낸 사실이 알려졌을 때 포드측 협상팀의 입지가 좁아졌을 것이고 협상은 그때 끝난 것 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