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大馬不死” 버티기에 시장 ‘철퇴’

  • 입력 2000년 10월 31일 19시 04분


1차 부도를 맞은 현대건설의 주식에 대해 증권거래소가 31일 거래를 중지시킴으로써 현대건설이 또다시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중동건설붐으로 한국경제를 도약시킨 ‘1등 공신’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것.

현대건설은 한달전부터 수차례 사실상 부도상태를 맞았다. 현대건설측이 결제를 못하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이를 먼저 막아주고 현대건설이 돈을 마련해 다음날 갚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평소라면 현대건설은 별 문제가 없는 기업이다. 현대건설의 올 영업이익은 8000억원. 부채가 5조3000억원이기 때문에 벌어온 돈으로 이자를 충분히 갚을 수 있다. 9월말 수주액도 22조원이고 고유가에 따른 중동건설붐도 예상된다.

위기의 시작은 현대그룹의 유동성위기가 공식화된 6월부터 건설에 돈을 빌려준 기관들 특히 제2금융권이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도 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결국 외환은행과 현대건설은 계속 차입금 상환에 내몰리게 될 경우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부동산이나 각종 유가증권을 팔아 1조원을 마련, 빚을 4조3000억원 규모로 줄이기로 한 것. 총자산 9조원에 유동자산만 5조원을 가지고 있는 현대건설이 시급하게 회사자산을 팔아 부채를 줄이면 시장의 신뢰를 충분히 회복시킬 수 있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자구안을 빨리 실천하지 않고 특유의 버티기로 일관했다. 결국 금융기관들은 현대의 자구안 발표에도 불구하고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을 연장해주지 않고 원금을 회수해갔다. 현대건설은 또 특유의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자구안 실천을 머뭇거렸다. 현대건설은 6월부터 9월말까지 농협 1250억원, 신한은행 880억원, 삼성생명 800억원 등 4개월간 무려 6000억원가량의 원금을 갚았다고 밝혔다. 올들어 5월말까지 상환한 차입금이 1730억원임을 감안하면 현대건설이 신뢰를 상실한 대가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자산이 9조원이 넘는 회사가 9월말 29억원의 현금을 가지고 매일 들어오는 돈으로 그때 그때 결제를 해나가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게 됐다. 자금계획이 조금만 빗나가도 부도가 나는 상황에 처한 것. 현대건설은 10월 한달간 원금 1400억원과 이자 423억원 등 1800여억원을 지급하다가 결국 31일 진성어음도 결제하지 못하는 위기를 맞게 됐다.금융권에서는 “기업이 신뢰성 상실로 원금상환압력에 시달릴 때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자구안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현대는 뒷북치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내부에서는 “유동자산도 많고 영업도 잘 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은 경영진의 위기관리능력 부족”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현대건설은 11월과 12월에도 각각 4000여억원씩 8000억원의 원금을 갚아야 한다. 이자까지 감안하면 1조원가량의 현찰이 필요한 셈이다. 1차 부도 사실까지 공개되는 바람에 원금상환 요구가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고 외환은행이 편법으로 처리해주기도 힘들어졌다.

<이병기·박현진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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