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출신 기업인들, 대북진출 박차

  • 입력 2000년 8월 17일 18시 50분


‘고향 땅에서 제2의 사업을 펼치고 싶다.’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보는 이북출신 기업인들은 가슴이 뛰고 있다. 금의환향을 학수고대해온 그들 중에는 수 년 전부터 대북 진출을 모색해온 이들이 적지 않다. 남북 화해무드가 지속되면 가장 적극적으로 남북경협에 나설 사람도 이들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북출신 현직 기업대표는 100명선. 망향의 한을 품고 작고한 기업인이 상당수에 이르고 생존한 이들도 대부분 연령이 70∼80세로 연로해 회장 혹은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하지만 대북사업에 관해서는 직접 챙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기업인은 물론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84). 강원 통천군 아산리 출신인 그는 소를 판 돈 70원을 들고 단신 상경해 세계적 기업을 일궈냈다. 기업인으로는 최초로 89년 북한을 방문해 대북 경협의 물꼬를 터놓았고 금강산 개발에 이어 경기 개성공단 건설 청사진을 마련하는 등 대북 사업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전경련 남북경협특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장치혁 고합 전 회장(평북 영변)은 최근 ‘고향투자사업 협의회’를 결성, 이북출신 기업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 협의회에는 강성모 린나이코리아 회장(함남 북청), 함태호 오뚜기 회장(개성) 등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큰 이익을 기대하기보다는 고향 땅에 자신의 사업을 펼쳐보고 싶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게 장회장의 설명.

엘칸토 김용운 회장(평양)은 97년 고향인 평양에 ‘만경대 구두공장’을 설립, 임가공 사업을 시작한데 이어 최근 공장 생산라인을 두 배로 증설해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엘칸토는 단순한 남성화 중심에서 지갑과 벨트 등 고난도 공법으로 전환하는 등 질적인 교류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밖에 대북 진출이 유망한 제조업종 중에는 신일산업 김덕현회장(평북 강계) 삼화콘덴서 오동선 명예회장(함남 영흥) 신도리코 우상기 회장(개성) 성보화학 윤대섭 부회장(개성) 인터엠 조동식 회장(황해 안악) 대원정밀 허송렬 회장(황해 평산) 등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제약 분야에서는 한국얀센 연만희회장(황해 연백) 한일약품 우대규 명예회장(평남 양덕) 유유산업 유특한 명예회장(평양) 일선신약 윤병강 명예회장(평남 순천) 현대약품 이한구 사장(황해 연백) 등이 북한과의 사업협력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중.

식품업계에서는 남양유업의 홍두영회장(평북 영변) 매일유업 김복용회장(함남 북청) 해태유업 민병헌회장(황해 연백)이 모두 이북 출신. 식품업은 경협이 쉽기 때문에 의외로 빠른 접점이 예상된다.

한국빠이롯드만년필 고홍명회장(개성) 영창악기 김재섭회장(평양) 동일교역 박기억사장(평남 강서) 에이스침대 안유수회장(황해 사리원) 등도 개별 협력을 추진 중이다.

일부에서는 대북경협에 대해 신중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김훈기 전 행정자치부차관(평남 용강)은 “중국 등을 거쳐 우회하다 보니 진남포까지 원료를 수송하는데 드는 물류비용이 유럽에 보내는 것과 맞먹는 경우가 있다”면서 “기업이 이익을 낼 수 있도록 경의선 복구 등 인프라를 확보하고 북한이 기업활동을 보장하는 제도개선을 해야만 남북경협이 제 궤도를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수묵기자>moo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