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크라이슬러 제휴]"봤지?" 으쓱한 몽구회장

  • 입력 2000년 6월 26일 19시 34분


26일은 정몽구(鄭夢九)현대자동차 회장에게 가슴 뿌듯한 날이었다.

모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 그의 웃음이 외부로 노출된 건 3월 부친인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청운동 집을 물려받았을 때 이후 3개월여 만에 처음.

현대 계동사옥 15층 대회의실에서 26일 열린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략적 제휴발표 기자회견은 정몽구회장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행사였다.

대회의실은 3월 ‘왕자의 난’ 파동 이후 그룹 회장직 박탈, 3부자 동시 퇴진 선언 등 그를 계속 벼랑으로 몰고 갔던 발표가 있었던 장소. 현대차측은 정회장이 ‘굴욕의 상처’를 안고있는 대회의실에서 성공적인 전략적 제휴를 발표함으로써 ‘무능하고 국제 감각이 부족한 경영인’이라는 일각의 비판이 옳지 않았음을 행동으로 입증했으며 자존심도 회복한 것으로 믿고있다.

정회장은 또 현대차 경영에 계속 참여할 것이라는 의지도 확실히 보여줬다. 평소 어눌한 말투 때문에 기자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온 그는 직접 발표문을 낭독했고 자신의 입으로 “경영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확실히 밝혔다. 결국 “아버지. 오늘 보셨듯이 저는 결코 무능한 2세 경영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자동차 경영에 계속 참여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부친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에게 강력히 전달한 셈이다.

그러나 경영권 문제가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측근들이 이런 상황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몽구회장 주변 사람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차 지분 2.9%중 2.19%를 26일 정주영 전 명예회장에게 매각해 ‘왕회장’의 현대차 지분을 9.1%로 늘린 것도 뭔가 숨겨진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주영 전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방북 후 대북 사업이 정리되면 경영권과 관련한 반격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정몽헌 회장은 표면적으로는 방북 준비로 바쁜 모습이다.

한가지 변화는 3부자 동시 퇴진 선언 이후 명패까지 떼고 철수했던 본사 12층 그룹회장실을 그대로 유지키로 한 것. 현대측은 이를 위해 정몽헌 회장의 직함을 현대아산 이사회 의장에서 이사회 회장으로 바꾸고 12층에 있던 현대건설 사무실을 별관 현대아산 사무실로 옮기는 대신 현대아산 사무실을 본사 12층으로 옮기기로 했다.

그룹측은 “전직 회장의 사무실을 본사 옆 별관에 따로 마련하는 것이 모양새가 이상해 결정한 것”이라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행동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설명한다. 날개가 꺾인 듯한 모습이 안타까워 측근들이 결정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사실 단순한 의전상의 문제로 호칭과 사무실을 바꿨다면 중요한 변화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났는데 형은 아버지 뜻에 항명한 채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불만에서 나온 행동이라면 정몽헌회장이 현재 상태를 앞으로는 더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어 주목된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