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빅뱅]잘못된 합병 되레 禍부른다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13분


은행 합병의 신호탄은 터졌지만 실제 합병에 이르기에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앞으로 합병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각 은행의 이해 득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주도하는 금융지주회사 방식의 합병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한빛 조흥 외환은행은 벌써부터 미묘한 입장차를 드러내고 있는 실정.

▼한빛-조흥-외환銀 이견▼

▽생각 다른 한지붕 세가족〓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 금융지주회사 아래 묶으려는 한빛 조흥 외환은행 중 가장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곳은 한빛은행. 한빛은행 이수길(李洙吉)부행장은 9일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고 정부 지분을 효과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금융지주회사 방식의 합병”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흥은행 위성복(魏聖復)행장은 이날 “일단 내년 상반기까지 5조원이 넘는 부실 여신을 완전히 털어내면 ‘클린뱅크’로서 좀 더 시너지효과가 높은 합병 파트너를 모색할 수 있다”며 지주회사 방식의 합병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위행장은 또 “일단 지주회사 아래 자회사 형태로 세 개 은행을 두고 시간을 갖고 합병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벌기에 불과할 수 있으며 가장 ‘하수(下手)의 합병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금융이 강한 은행끼리의 합병이 시너지효과를 만들어 낼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외환은행 김경림(金璟林)행장은 “세 개 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묶는 것만으로는 전산 분야의 투자를 줄이는 것 외에 별다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합병에 앞서 부실자산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행장은 특히 “외환은행은 코메르츠뱅크를 포함해 민간 지분이 70%에 달하는 민간 은행이며 예금보험공사의 출자도 없기 때문에 공적자금 투입 은행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3개 은행 합병에 다소 부정적이라는 평가다.

▼시간끌면 시장신뢰 잃어▼

▽합병의 최우선은 시너지효과〓전문가들은 정부가 거론한 ‘연내 공적자금 투입 은행의 금융지주회사 합병’이 자칫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정책으로 흐를 것을 가장 우려한다. 일단 시장의 안정을 위해 지주회사로 묶어 두고 시간을 끌 경우 주도권을 쥐려는 갈등과 유사 부문이 정리되지 않고 그대로 잔존하면서 시장의 신뢰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량 은행간의 합병에 있어서도 정부가 구두 개입을 통해 압박하기보다는 합병에 앞서 각 은행의 부실 채권 정리와 자본 확충이 이뤄질 수 있는 법적 및 제도적인 환경을 먼저 조성해 줘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조흥은행 경제연구소 권완상(權完相)차장은 “해외 금융기관 합병의 절반 이상은 실패로 끝났다는 점에서 ‘합병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신중한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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