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지업계 덤핑싸움]외국업체끼리 "네탓"공방

  • 입력 2000년 6월 6일 19시 57분


지난달 17일 과천 정부청사 산업자원부 대회의실에서는 국내외 건전지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이 모여 건전지 수입으로 인한 국내산업의 피해를 놓고 공청회를 열었다.

‘피해자’격인 신청인석엔 국내업체인 서통과 로케트전기가, 피신청인쪽엔 미국 질레트와 싱가포르 에너자이저 관계자가 각각 자리를 잡았다.

신청인측이 “외국산 건전지가 덤핑으로 수입돼 국내 건전지 산업의 경영 수지가 악화되고 고용 인원이 줄어드는 등 큰 피해를 봤다”고 나서자 에너자이저측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춘 수입 브랜드가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결과일 뿐 덤핑 수입으로 인한 피해는 아니다”라고 맞섰다. 이색 장면이 연출된 것은 바로 이 때. 질레트측이 “문제를 일으킨 것은 에너자이저인데 왜 질레트까지 포함됐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피신청인석에 앉아있던 에너자이저를 걸고 넘어진 것. 언뜻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건전지 덤핑 논란은 지난해 서통과 로케트가 수입건전지 업계 전체를 반덤핑 혐의로 제소하면서 불거졌다. 겉으로는 국내 업체가 외국 업체를 제소한, 지극히 정상적인 케이스였지만 서통과 로케트는 각각 96년과 98년 국내 판매 부문과 상표권을 질레트에 넘긴 상태. 사실상 질레트와 에너자이저, 외국업체끼리 덤핑 문제를 놓고 일전을 벌이게 된 셈이다.

‘건전지 전쟁’ 1라운드는 산자부 무역위원회가 3월 예비판정에서 외국산 건전지업계에 23.33∼128.84%의 잠정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해 질레트의 판정승.

이에 대해 에너자이저측은 “질레트와 특수 관계에 있는 서통과 로케트는 제소할 자격조차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공청회에는 싱가포르 정부 무역위원회 관계자까지 참석해 최종 덤핑 판결이 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로 문제를 끌고 가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이에 대해 질레트측은 “공급 가격을 서통 및 로케트와 서로 협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가 결코 아니다”라고 맞서고 있다. 국내 반덤핑 제도를 둘러싼 외국업체끼리의 대결, 이달중 열릴 최종 판결에서 과연 정부는 누구 손을 들어줄까.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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