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동성위기 파장]중견기업 돈줄 '꽁꽁'

  • 입력 2000년 5월 29일 19시 27분


현대건설과 상선의 자금난 사태의 여파로 기업들이 돈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3, 4개 의 중견그룹들은 회사채 발행이 중단된데다 기업어음(CP)마저 돌지 않아 연쇄부도의 위험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여기에 4대그룹마저 자금난에 대비해 시장에서 자금을 긁어모으는 통에 자금시장이 극도로 얼어붙고 있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일부 대기업의 자금확보를 도와주기 위해 금융기관의 동일계열 회사채 보유한도제 마저 폐지시킴에 따라 시중자금이 삼성 LG SK그룹 등으로만 몰려 중견기업은 빈사상태를 맞고 있다.

굴지의 중견 A그룹 자금담당 임원은 “30%의 금리를 주고서라도 회사채를 발행하고 싶으나 인수할 능력을 갖춘 기관이 없어 포기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200조원에 이르는 단기성 자금을 장기성 자금으로 전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은행의 신탁상품에도 투신상품처럼 비과세 혜택 등을 적용, 이들 자금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기업으로 흘러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

▽제2금융권 및 기업의 현금확보〓제2금융권의 현금확보에 불을 댕긴 것은 새한그룹 워크아웃에 이은 현대그룹 사태.

새한그룹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연쇄부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여기에 현대사태는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됐다. 중견기업들의 CP는 아예 시장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해 기업의 자금줄이 동결되다시피한 것.

이에 따라 종금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은 미래상황을 불투명하게 보고 회사채 및 CP 만기연장을 거부하고 현금확보에 나서고 있다.

▽시중자금, 부익부 빈익빈〓시중자금의 최대 수요처는 다음달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갚고 새로운 채권을 발행하는 차환물량. LG투자증권 성철현채권팀장은 “올 하반기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는 약 29조3000억원이며 우량기업들이 미리 장기저리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만기도래 금액은 △6월 3조1000억원 △7월 5조1000억원 △8월 2조6600억원 △9월 2조3500억원 △10월 2조8000억원 △11월 3조3000억원 △12월 9조8000억원 등이다.

▽금감원, 타이밍을 못맞췄다〓금융감독원은 4대그룹이 유상증자와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 이내로 맞췄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운용해온 금융기관 동일계열회사채 보유한도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자금경색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금융기관이 A등급 이상 우량채권 매입규모를 넓혀준 것이어서 자금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금융불안, 실물경제에도 타격〓자금난에다 주가하락으로 인한 ‘자산효과’가 겹쳐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1·4분기 성장률이 12.8%로 13년 만에 4분기 연속 두자릿수 성장률을 보였다고 발표했으나 하반기에는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례로 5월 들어 PC, TV, VTR 등 가전제품의 판매도 줄어들고 백화점 매출도 30% 가량 줄어든 것으로 업계는 밝혔다.

삼성전자 마케팅전략 그룹팀 박세권(朴世權)부장은 “1·4분기에 비해 4, 5월 가전제품 판매량은 20% 가량 줄었다”며 “주식투자가 일반화되면서 주가하락은 가전제품의 매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LG 경제연구원의 이근태(李根邰)책임연구원은 “올해 초 상반기와 하반기 성장률을 각각 10.3%와 7.1%로 예상했으나 하반기 성장률은 6.0%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구자룡·김두영기자>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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