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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5월 7일 21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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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고위 관계자가 오전에는 “정부압력으로 사재출자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재계에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했다가 오후에는 다른 관계자들이 기자실로 찾아와 “손병두(孫炳斗)부회장은 사재출자에 대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이같은 입장을 기사에 반영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 사재출자란 자신의 개인재산을 투자하는 것이므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전경련은 당초 현대문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는 방침이었지만 뒤늦게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
재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익단체인 전경련이 정부요구에 의해 이뤄진 사재출자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은 그동안의 관례로 보아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전경련이 사재출자를 환영한다고 태도를 돌변한 것은 기이한 일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사재출자에 대한 전경련의 부정적 입장이 알려진 뒤 국가정보원 관계자로부터 진의를 묻는 연락이 왔다”며 “전경련이 무척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해있다”고 털어놓아 태도변화의 배경을 짐작케 했다.
재계는 그동안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최대한 억제해 왔다. 꼭 비판할 일도 익명으로 하거나 전경련을 앞세워 했지만 전경련조차도 정부비판에 자유스럽지는 못했다. 정부압력을 극복하겠다는 대단한 결심이 있을 때만 가능했다.
전경련이 침묵하는 날이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침묵이 강요되면 재계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안으로 새기고 정재계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익단체들이 나름대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이른바 DJ노믹스의 근간인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 이뤄지는 것은 아닐까.
임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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