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재경-경제4단체장 '봉합' 간담회

  • 입력 2000년 4월 28일 19시 34분


기업개혁 방법론을 놓고 총선 이후 팽팽한 대결구도를 형성해온 정부와 재계가 ‘현대그룹 위기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과 여론의 비판을 의식,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화해분위기를 연출했다.

이헌재(李憲宰)재정경제부 장관과 김각중(金珏中)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4개 경제단체장은 28일 서울 여의도에서 오찬 간담회를 갖고 정부와 재계가 대립하는 것처럼 외부에 비쳐지는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는 게 양측의 공통된 설명. 그러나 주요 그룹 세무조사와 구조조정본부 존폐여부 등 핵심쟁점에 대한 의견 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여서 ‘완전 화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양측의 감정적 앙금이 가시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어색한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여론의식 정부서 제외▼

▽무엇이 논의됐나〓정부측은 대기업 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 조사 등 일련의 조치에 대해 특별한 의도를 갖고 있거나 특정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업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장관은 “우리 경제 체질을 개선하려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재계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고 경제단체장들도 일단 정부입장에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모임에 배석한 권오규(權五奎)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정부와 재계는 서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만나고 대화채널도 넓혀나가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장관은 세무조사를 ‘정부조치’로 표현했고 재벌개혁이라는 단어 대신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골라 썼다. 회동을 먼저 제의한 마당에 용어상의 문제로 재계를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였다.

재계측도 이날 모임에 대한 답례로 이장관을 다음달 9일 만찬 간담회에 초청하는 등 정부와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재계선 '정부 속내' 탐색▼

▽화해는 했다는데…〓이날 회동은 양측 모두 대화재개를 통한 국면전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 정부는 재계의 반발이 계속될 경우 관치경제 및 국내기업 역차별 논란은 물론 경제운용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태를 우려했고 재계 역시 정부의 강공을 누그러뜨리면서 ‘진짜 속내’를 탐색할 기회를 원했다.

그러나 이날 회동에서의 ‘말의 성찬’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재계의 갈등관계가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소 빨라 보인다.

이장관은 간담회 직전 ‘4대그룹 총수들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또 사진기자들이 경제단체장들과 악수를 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냥 사진만 찍자”며 완곡히 거절했다. 재경부 관계자도 “오늘 간담회는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며 ‘재벌개혁’의 후퇴로 비쳐지는 시각을 경계했다.

재계도 그동안 재무구조개선 등에 성의를 보인 만큼 앞으로 기업개혁은 재계의 자율적 구조조정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의 갈등은 일단 봉합국면에 들어섰고 정부의 재벌개혁 강도도 상황전개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될 여지를 남겼지만 양측의 견제와 긴장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원재·임규진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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