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 '왕관' 쓰긴 썼는데…투신不實 큰 부담

  • 입력 2000년 3월 28일 19시 40분


현대의 후계구도를 둘러싸고 13일간 치열한 공방을 벌였던 정몽구(鄭夢九) 몽헌(夢憲)회장 두 형제간의 ‘계동전투’는 외견상으로는 정몽헌회장(MH)의 승리로 여겨진다. 실질적인 전과(戰果)도 그럴까.

99년 기준 매출 68조원, 자산 62조원에 이르는(자동차 소그룹 제외) 현대그룹의 단독회장이 된 MH측은 현대증권 등 금융계열사를 확실히 장악한 것이 최대 전리품. 현대증권은 요즘 한달 순이익이 1000억원에 달할 정도의 ‘효자 계열사’. 게다가 바이코리아 펀드로 계열사 주가관리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직 뚜껑을 열지 않아서 그렇지 현대투신이 엄청난 부실을 안고 있어 현대에 막대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룹의 시너지 효과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대 자동차가 자동차 수출물량을 현대상선에 맡기고 또 현대상선은 자동차수출선박의 건조를 현대미포조선에 맡기는 등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는데 그룹분리 후에도 이런 선순환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

현대자동차로 볼 때 몽구(MK)회장의 개인적 야심은 좌절됐지만 회사는 오히려 얻은 것이 많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그룹에서 분리되면 자동차전문그룹(99년 기준 매출 24조원, 자산 25조원)의 최고 경영자와 임원들이 자동차 산업에만 전념할 수 있다. 그룹의 경영전략 때문에 자동차부문이 타 계열사를 지원할 필요도 없다.

이번 내분으로 당장 정부의 현대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면 몽헌회장측에 공격의 초점이 모아질 것이라는 게 MK측의 관측. 주가도 오를 거라고 주장한다.“현대자동차의 지난해 순이익은 4000억원인데 ‘현대’라는 디지털시대에 뒤떨어지는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손해를 본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동차 소그룹은 앞으로 새로운 투자를 계획할 때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못받고 금융계열사도 없기 때문에 자본조달에 애로를 겪을 수 있다. 6조∼7조원이 소요되는 대우자동차 인수도 현실적으로 물건너 갔다는 분석.

더구나 현대그룹 이미지와 신인도가 급전직하해 두 사람은 누가 승리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입었다. 해외투자자들도 이번 현대사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며 외신들도 이번 사태를 취재하고 있다. 현대내분에 대한 해외금융시장의 평가는 곧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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