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후계구도 확정]MH 역전승리…MK '10일 천하'

  • 입력 2000년 3월 25일 0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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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후계 구도 확정〓몽헌회장이 정명예회장을 면담한 뒤 현대그룹측이 밝힌 인사 파동 관련 조치는 크게 세 가지. △몽구회장을 그룹 경영자협의회 회장에서 제외하고 △몽구회장은 자동차소그룹에만 전념하며 △이익치회장은 현대증권회장직을 유지한다는 것. 한마디로 몽헌회장측의 일방적인 승리.

몽헌회장은 이에 따라 현대그룹의 5개 소그룹 중 전자 건설에 이어 금융 부문까지 장악,실질적인 후계자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반면 몽구회장은 현재 맡고 있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정공 캐피털(자동차 할부금융)등 자동차 소그룹 경영에만 전념할 전망이다.

현대는 이번 파동의 후유증으로 연쇄 인사의 태풍을 맞을 전망이다. 두 형제의 갈등 과정에서 그룹내 경영진이 양쪽으로 극명하게 갈려 대립했기 때문에 MK라인의 인사들이 그룹경영에서 대거 배제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점쳐진다. 이날 후계 구도 확정 발표에 대해 MK측 일부 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고봐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정명예회장이 생존하는 한 그 희망은 헛된 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인사에 반발하며 항명 파동을 벌인 이익치회장은 자신이 따르던 몽헌회장이 후계자로 확정됨에 따라 추후 그룹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몽헌회장의 이회장에 대한 신임은 이번 인사 파동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왜 정몽헌인가〓사실 이번 인사 파동이 있기 전에도 그룹 후계 구도는 정몽헌회장쪽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것이 현대 내외부의 분석이었다. 교육 수준이나 지적 판단 능력을 감안해 왕회장이 내심 MH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군데서 감지됐었다. 전자와 건설 부분 그리고 주인이 확정되지 않은 금융 부분까지 몽헌회장의 사람인 이익치회장이 맡고 있다는 사실은 그런 사례중 하나.

그러다가 이익치회장이 전격 경질되고 MK라인의 노정익(盧政翼)현대캐피털 부사장이 현대증권 사장으로 내정되면서 그 구도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관측이 나왔었다. 그러나 정명예회장이 몽헌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대그룹의 후계 구도가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정해진 것.

정명예회장이 몽구회장을 그룹 경영에서 전격적으로 배제시킨 배경에는 이번 인사 파동에 대해 몽구회장에게 책임을 물은 성격이 짙다. “주가조작 사건으로 업무 정지 상태인 이회장을 그대로 놔두면 업무 공백이 크다”는 논리로 아버지를 설득, 이회장을 경질하는 허락을 얻어내는데 성공은 했지만 이를 마치 금융소그룹을 몽구회장에게 주고 나아가 몽구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된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면서 인사 파동을 매끄럽게 마무리하지 못한 데 대해 명예회장이 노했다는 것.

또 정명예회장은 디지털경제시대를 맞아 변화가 심한 시대에 현대그룹이라는 거함을 이끌고 나가려면 나이가 젊고 시대 변화에 적응이 빠른 몽헌회장이 적격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높다.

▽현대의 앞날〓일단 정몽구회장이 이끄는 자동차소그룹이 9월에 분리되면서 몽헌회장과 몽준씨가 대주주로 있는 현대건설과 현대중공업이 갖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지분이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준(鄭夢準)국회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역시 2003년에는 지분 정리를 끝내고 전문경영인이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형태로 분리될 예정. 건설 전자 금융 소그룹에 있는 몽구 몽헌회장의 지분도 정리할 방침이다.

그룹측은 분리된 소그룹들은 계속해서 ‘현대’라는 회사명을 쓰도록 해 느슨한 형태의 그룹으로 남아 각 계열사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때 현대브랜드의 후광 효과를 그대로 유지토록 할 계획이다.

몽헌회장이 직할하는 건설 전자 금융을 99년 구조 조정 계획에 따라 3개의 소그룹으로 분리하고 몽헌회장이 원격 조정하는 형태로 갈 것인지, 당초 계획을 바꿔 건설 전자 금융부분을 한 그룹으로 합쳐서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3개의 소그룹으로 분리하는 안은 공정거래법상의 규정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 현재는 힘을 얻고 있는 상태.

후계 구도의 실질적인 부분인 정명예회장 소유 현대계열사 주식의 처분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후계자로 확정된 몽헌회장이 당장 신경을 써야 할 점은 이번 인사 파동으로 추락한 현대 이미지의 복원이다. 국민의 눈에는 이번 사태가 전근대적 경영 구조에서 비롯된 형제간 재산싸움으로 비쳐졌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이에 따르는 사회적 불이익도 감수해야 할 처지에 처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재벌에 대한 2차 구조 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현대가 첫 번째 타깃이 될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병기·박중현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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