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잡으려 환율하락 눈감는다?…정부 "상상못할 일"

  • 입력 1999년 12월 7일 19시 48분


가파른 원화절상(원―달러환율 급락)으로 인해 물가가 낮아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일정수준의 환율하락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일부 외환딜러들 사이에는 외환당국과 통화당국간의 ‘저환율―저금리 교환설’까지 퍼지는 실정. 원―달러 환율이 7일 급기야 연중 최저치로 급락하자 루머는 설득력을 더해가는 분위기다.

★정부 "상상못할 일"

재정경제부는 “거시경제의 핵심지표인 환율을 물가와 맞바꾼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나리오”라며 일축. 또 한국은행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인 측면이 있는건 사실”이라면서도 두 기관의 교감설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인했다.

전문가들은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은 희박하더라도 지금처럼 저금리에 따른 물가상승 부담을 환율하락이 떠맡는 식의 흐름은 우리경제의 체질강화라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하고 있다.

▽물가잡는 환율〓한은이 올들어 줄곧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월까지 불과 0.8% 오르는데 그쳤다.

금리가 떨어지면 물가가 오른다는 상식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

지난해 소비자물가가 7.5%로 급등한데 따른 반사효과를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견고한 물가안정세는 통화당국도 미처 예상치 못했던 이변.

한은 고위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불안한 와중에도 물가를 안정시킨 1등공신은 당연히 환율하락”이라며 “환율이 낮게 유지되면서 금리정책을 운용하는데 약간의 융통성이 생겼다”고 말했다.

환율과 금리의 정책조합(Policy Mix) 가능성이 대두되는 것은 이같은 주변정황 때문.

한 외환딜러는 “하반기들어 환율이 떨어져도 당국의 개입의지가 의외로 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달러공급이 넘치는만큼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일정수준의 환율하락을 용인하면 한은은 저금리 유지로 화답하는 것이라는 논지.

▽부담은 내년 물가가 뒤집어쓴다〓환은경제연구소 신금덕(辛金德)동향분석팀장은 “환율로 물가를 다루는 식의 정책은 효력이 짧은 반면 후유증은 오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내년 물가에 큰 부담

저물가와 저금리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한 수단으로 환율을 이용하는 정책조합이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거두겠지만 올 한해동안 풀린 돈은 결국 내년 물가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설명.

환율하락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외국인 투자자에게 노출될 경우 원화강세로 인한 이득은 결과적으로 외국자본 몫이 될 것이라는 비판론도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연구위원은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지만 구조조정 마무리 등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며 “금리 물가 환율 등 거시경제 지표의 운용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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