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지역 경제난]『어려운 현실 경제논리로 풀어야』

입력 1999-01-25 19:46수정 2009-09-24 13:09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한나라당의 마산 집회를 계기로 부산을 비롯한 영남권 경제와 민심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전국적인 경제사정은 IMF관리체제 이후 한결같이 심각하다는 지적들이다. 동아일보는 부산지역 경제실태에 이어 대구를 비롯한 영남권 일부와 호남 경인 중부지역 등 주요 권역별 경제상황도 점검해 보기로 했다.》

“많은 시민이 자진해서 참석한 것을 보면 이 지역 경제의 심각성과 민심의 소재를 읽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유언비어가 난무하니까 얘기나 한번 듣자고 나간 것이지 요즘 어딘들 어렵지 않겠어.”

한나라당의 마산 집회에 대한 25일 현지의 평가는 이처럼 엇갈린다.

한나라당 경남도지부의 안창호 조직부장은 “25일 아침에만 20여통의 격려 전화를 받았다”면서 “현 정권과 이 지역 경제에 대한 민심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회의 경남도지부 이봉근대변인은 “특별히 누구를 탓하기 위해서 집회에 나갔다기보다 답답한 마음에서 나간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하고 “조금만 차분히 생각하면 누구나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행태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고 말했다.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요즘 영남권의 민심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원인을 한 두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뿌리깊은 지역감정과 IMF, 상대적 박탈심리, 잘못된 정보와 인식 등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민심이 흔들리면 흔들릴수록 “경제문제를 지역감정이나 정치문제와 연결시켜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만난 근로자 박태현씨(35)의 말이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권이 이를 구실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측면이 없지 않다. 정부 여당이 영남 경제의 현실을 외면하지는 말되 순수한 경제논리로 풀어주기 바란다.”

물론 대구 경남북지역의 경제가 부산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면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서공단에 들어서면 굳게 닫힌 철문 위로 “은행 담보물이니 시설을 훼손하지 마시오”라는 경고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1천1백여 입주 업체 중 정상 가동되는 곳은 5백개도 안되고 그동안 2백40여개 기업이 문을 닫았다. 이 지역 건설업계 빅3인 청구 우방 보성을 비롯한 상위 6개 건설업체가 지난해 모두 법정관리나 화의결정,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에 처해졌다. 지난해 쓰러진 건설업체만 2백70여개. 부도액수는 7천1백여억원으로 97년의 2.5배였다.

대구지역 수출의 80%를 차지하는 섬유도 대표적 기업인 동국과 갑을이 지난해 하반기에 나란히 워크아웃 판정을 받았다. 대동은행의 퇴출, 대구종금 경일종금의 폐쇄로 지역 금융사정도 바닥이다.

시민들은 또 이 지역 유일의 5대그룹 계열사인 삼성상용차가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에 도매금으로 넘어가 문을 닫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1백여개의 협력업체를 포함해 1만여명의 고용이 여기에 달려 있다. 대우전자와 LG반도체 공장이 있는 구미공단도 빅딜 발표 후 흔들리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경제난에 편승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유언비어도 나돌고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 ‘이슈 추적’팀과 현지 취재진이 만난 많은 시민은 유언비어에 현혹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부산시청 앞에서 만난 시민 김영준씨(41)는 “중앙에서도 유언비어까지 나올 만큼 경제와 정치논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지만 “떠도는 소문 중 대부분이 과장 조작됐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비롯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삼성차 빅딜문제만 하더라도 “그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역경제의 붕괴를 막을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부산시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자동차 유치 당시 부산시가 평당 90만원인 공장부지를 평당 60만원으로 해주는 등 삼성에 지원을 많이 해줬다”며 “이제 SM5를 계속 생산할 수 있도록 삼성이 대우측에 보조를 해주는 등 책임을 다해야 할 차례”라고 말하기도 했다.

〈부산·대구·창원〓이기홍·강정훈기자〉sechepa@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