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희건 신한銀그룹회장 『경제 민간에 맡겨야』

  • 입력 1998년 9월 20일 19시 29분


국제통화기금(IMF) 한파 속에서도 착실한 성장이 돋보이는 신한은행 그룹 이희건(李熙健·81)회장에게선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은 정열과 집념이 느껴진다.

이회장은 일본내 신용금고와 조합 중 확고부동하게 1위를 지키는 간사이(關西)흥은의 회장. 오사카(大阪)재일교포사회의 대부(代父)이기도 하다. 그의 지론은 ‘무소유의 철학’. 신한은행과 간사이흥은의 그의 지분율은 각각 1%에도 못미친다.

17일 신한은행 이사회 참석차 서울에 온 이회장은 “기업 자체를 키우는 게 목적인 만큼 필요이상의 주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온나라가 IMF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

“IMF사태는 국가가 정책을 오판해 비롯된 천재(天災)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기본적으로 경제를 민간에 맡겨야 합니다. 정부의 한마디로 주식시장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최근 김종필(金鍾泌)총리를 만나서도 ‘열심히 하는 기업을 정부가 어렵게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회장은 여기서 “지난 1,2월에는 ‘국민이 정신차리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3월부터는 전과 다름없어지더니 최근엔 전보다 오히려 더한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신한은행의 성장 비결은….

“밑에다 철저히 맡기기 때문입니다. 능력위주 인사를 하고 지방차별은 안된다는 게 내 신조입니다. 신한은행 설립 때도 정부측에 ‘은행허가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안받겠다. 특히 인사에 관여하면 해당자를 사임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뉴욕지점장 발령예정자에 대해 청와대에서 청탁이 들어와 발령을 취소한 일도 있었죠.”

―일본도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는데 우리가 참고할 점이라면….

“일본은 무역흑자로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안써 문제가 된 만큼 우리와 상황이 다릅니다. 최근 일본장기신용은행의 부실채권처리(정부자금 투입예상액 5천억∼1조엔)를 놓고 한달이상 옥신각신한 끝에 여당이 야당안을 대폭 수용해 해결책을 마련한 것을 보고 ‘일을 할 줄 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고 알려졌는데….

“박전대통령은 대구사범 입학동기입니다. 연락이 없다가 5·16직후 ‘재일교포 투자가들을 데리고 와달라’는 부탁을 해 50명을 끌고 온게 시작이었습니다. 각종 정책건의를 한 것은 사실이나 내 문제를 얘기한 적은 없습니다. 현 외환은행자리(구 내무부) 땅의 인수를 제의하는 등 여러차례 특혜제의가 있었으나 모두 거절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에게는 의리와 예의를 지키되 뇌물을 준 적은 없습니다. 돈을 줬더라면 감옥에 갔을 겁니다.”

이회장은 88올림픽 때 재일교포 사회에서 5백40억원을 걷어 헌금하는 등 고국에 대한 지원도 많이 했다. 올해 11월로 9주년을 맞는 ‘사천왕사(四天王寺) 왔소’행사는 백제 왕인(王仁)박사의 일본 도착을 복원한 축제로 간사이흥운이 사실상 인력 재정을 도맡아 이제는 오사카의 명물로 자리잡았다.

이회장은 10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오사카방문에 대비해서도 총영사관측과 협조, 차량 인력 지원 등 민간차원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그는 “나라를 잃고 일본땅에 끌려와 고생끝에 자립해서도 국적을 버리지 않고 있는 재일교포의 역사적 특수성을 정부와 국민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관기자〉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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