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퇴출]상장사 10곳뿐…대부분「낯선 기업」

  • 입력 1998년 6월 18일 20시 10분


은행권과 금융감독위원회의 1차 부실기업판정 결과 나타난 퇴출대상기업의 범위와 기준을 놓고 산업계와 금융권에서 논란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퇴출대상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의 자산이나 부채가 엄청난 규모여서 심한 금융경색 등이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퇴출이 예상되는 기업들만 포함됐다며 ‘별것 아니다’고 낮은 점수를 준다.

‘은행권이 진짜 부실기업이 아니라 여신회수가 용이한 기업만 골랐다’는 지적까지 제기되는 등 판정기준을 둘러싼 시비가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1차 부실기업판정에서 퇴출대상으로 선정된 55개사는 총 판정대상 3백13개사의 17.6%에 해당한다.

은행연합회의 여신자료에 따르면 55개사에 대한 은행 종합금융사 보험사 리스사 상호신용금고 등 금융권의 여신(대출+지급보증)은 5조3백39억원. 외상매입금 등을 합한 부채는 이보다 훨씬 많다.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은 “이들 기업의 4월말 현재 부채는 모두 17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55개사의 총자산은 9조2천6백37억원, 매출액은 7조7천3백23억원, 종업원은 총 3만명 이상이다.

그중 자산이 1천억원 이상인 회사는 18개로 현대리바트 현대알루미늄 이천전기 LG전자부품 LG오웬스코닝 범아석유 해태유통 해태전자 해태제과 신호상사 대한중석 거평산업개발 거평종합건설 시대유통 한일합섬 진해화학 일화 양영제지 등.

이처럼 제법 덩치가 큰 기업들이 포함된 것 같지만 이번 부실판정이 부실기업과 우량기업의 선을 명확히 그어주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많다.

지금까지 증권가를 중심으로 나돌던 퇴출대상기업 명단에서 거론된 큰 기업들은 모두 빠졌기 때문. 따라서 이번에 살아남았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55개 퇴출대상 대기업중 상장사는 현대리바트 해태유통 해태전자 해태제과 신호전자통신 영진테크 대한중석 한일합섬 동국전자 대한모방 등 10개사. 이중 해태유통 해태전자 해태제과 대한중석 대한모방 등 5개사는 이미 부도를 낸 기업이다.

특히 5대 그룹 계열사의 경우 상장사는 단 1개에 불과하고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기업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5대 그룹 이외의 그룹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증이 있었기 때문에 퇴출판정을 받지 않은 나머지 기업들은 회생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이번 부실판정에서 기업의 단순한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영업이익창출능력 등 미래가치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또 기업의 금융비용부담능력을 계산할 때도 현재의 고금리가 아닌 정상적인 금리수준을 전제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고금리를 감당하지 못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당수 기업들이 퇴출대상기업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같은 평가기준 때문에 97년에 흑자를 내고도 퇴출기업대상으로 선정된 기업도 있다. 현대중기산업 선일상선 오리온전기부품 SK창고 해태제과 대한중석 거평종합건설 양영제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금감위는 다만 5대 그룹에 대한 부실판정은 다소 미흡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5대 그룹의 경우 명백히 드러난 회계자료만을 놓고 판정했기 때문에 부당한 내부자금거래에 의해 대출원리금을 상환해온 계열사들이 제외될 수 있었다는 것.

〈천광암기자〉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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