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률/건설업계 부도행진 막을 수 없나

  • 입력 1998년 4월 4일 20시 34분


지난해 말 외환 위기가 밀어닥친 이후 지금까지 1만3천여개의 업체가 도산했다고 한다. 건설업은 이같은 유례없는 경제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 올들어 매일 2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학계에서는 최근 건설업체들의 대량 도산이 건설업의 기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이번 사태를 체질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매일 20여개업체 쓰러져 ▼

건설업체들의 연쇄부도에는 우리 건설업계의 취약한 구조와 관행이 그대로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부도사태를 단순히 업체들의 부실경영 탓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으며 구조조정 운운하며 수수방관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태도다.

최근 건설업계의 연쇄부도는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져가고 있어 이미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평소 건실하다는 평을 듣던 중소건설업체 A사가 최근 부도를 냈다. 그런데 A사가 부도에 이르게 된 내막을 들여다보면 A사의 부도는 예정돼 있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회사는 발주자로부터 공사대금 선급금으로 받았던 어음들을 단 1장도 사용할 수 없었다. 받아주는 금융기관이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철석같이 믿었던 어음이 휴지다발로 변해버린 데다 연 30%에 육박하는 고금리가 숨통을 조여오자 A사는 두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건설업체들은 관련 공제조합이 발급해주는 보증서가 있어야만 시공에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A사가 부도를 내면 보증업체인 B사가 꼼짝없이 그 공사를 이어받아 끝마치거나 수백억원에 이르는 보증금을 뒤집어써야만 한다. 실제로 B사도 공사도중에 부도를 냈다.

그러나 연쇄부도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한 동을 짓는데도 수십개의 하청업체가 달려드는 하청 재하청 관행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수십개의 건설업계가 도미노처럼 쓰러질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3만개가 넘는 건설업체중 3분의1이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 어느때보다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기다. 일파만파의 부도행진을 그대로 내버려둬서는 구조조정은커녕 걷잡을 수 없는 사회경제적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건설업은 여전히 제조업이나 서비스업보다 고용창출 능력이 월등한 우리 국민경제의 기간산업이다.

연쇄부도와 이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설업계의 극심한 자금난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부채비율이 800%에 육박하는 부실재벌에는 협조융자라는 미명 아래 수천억원을 선뜻 내주면서도 중소기업에는 수억원을 빌려주지 않아 흑자도산의 공범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시중 금융기관들의 현실이다. 이같은 재벌에 편중한 자금지원 관행을 시정해야 중소업체가 대부분인 건설업계가 회생할 수 있다.최근 정부가 대규모 공공투자사업을 조기에 집행하고 공공 근로사업을 확대키로 한 것도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다. 외환법과 외자도입촉진법을 제정, 외국인 투자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고 외국인의 토지취득을 어렵게 하는 법적 장애요인을 없애기로 한 것도 환영할 만하다.

▼ 자금난 해소대책 절실 ▼

이처럼 외국인에게는 갖가지 규제를 풀어주면서도 국내 건설업체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규제의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정책의 일관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국내 건설 관련 규제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공사계약 이행 선급금지급, 하도급 보증 등 건설공사 관련 각종 보증제도를 경제 여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재정비하고 본래 취지를 살려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제도개혁 의지를 일선 공사현장에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 집행력과 검증 노력이 중요하다.

김종률<변호사·설비공사 공제조합 법률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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