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경제정책]정책 『들쭉날쭉』 업계 『우왕좌왕』

  • 입력 1998년 3월 25일 19시 59분


출범 한달을 맞은 새 정부 경제팀은 외환위기의 큰불은 일단 잡아가고 있지만 외자유치, 재벌 및 금융개혁, 실업대책 등에서 부처간에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경쟁적으로 불쑥불쑥 내놓고 있다.

또 새 여권에 참여한 자민련 등에서도 경제정책을 놓고 돌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금융기관 등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자들과 일반국민까지 경제정책의 방향을 종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의 극복과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톱니가 맞는’ 장단기 경제프로그램을 시급히 제시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또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이전단계의 정책조정자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정책 혼선〓이규성(李揆成)재정경제부장관은 16일 김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와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외국인 토지 취득 및 관리에 관한 법’을 폐지하겠다고 보고했다.

다음날 이정무(李廷武)건교부장관은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토지시장은 전면개방하되 외국인토지법을 없애지 않겠다고 보고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재경부가 과거 재경원과는 달리 조정기능이 없는데도 독선을 일삼고 있다”며 재경부의 비슷한 ‘월권’사례에 대한 내부 조사까지 벌였다.

감사원은 최근 경부고속철도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감사 의견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바로 다음날 건교부는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련업계와 국민은 어떤 것이 새 정부의 진짜 정책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다.

새 정부의 첫 경제대책조정회의에서 이기호(李起浩)노동부장관은 이자소득세에 실업세를 매겨 이를 실업대책 재원으로 쓰겠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는 과세형평을 무시한 채 무턱대고 실업대책만 강조한 ‘졸작’구상이라고 일축했다.

한편 신여권 인사들은 한보 등 부실기업 처리 및 재벌개혁 등과 관련, 정부측과 조율되지 않은 입장을 불쑥불쑥 개진해 정책에 혼선을 더해주고 있다.

▼인간관계에 의존하는 정책조율〓국정의 최고책임자인 김대통령을 빼고는 경제부처간에 조정자가 없다. 그러다 보니 정책 조율이 관계장관 등의 개인적 친분에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기획예산위원회와 재경부의 정책조정이 대표적인 사례.

정부조직법상 예산청은 재경부 산하이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기획예산위의 지휘하에 들어갔다. 재정과 관련한 정책조율은 진념(陳稔)기획예산위원장과 이규성재경부장관이 서로 의견을 묻고 이를 적절히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조직법상의 명확한 업무구분에 따르기보다는 이처럼 각부처 수장(首長)의 성격과 파워에 따라 업무가 왔다갔다하다 보니 ‘욕심많은’ 수장들이 성급하고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25일 종합상사들의 해외현지법인에 대한 빚보증도 일반기업과 마찬가지로 감축토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해외현지법인에 대한 빚보증은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공정위는 최근 30대그룹에 대해 다음달 중순까지 계열사간 대여금 규모 현황과 계열사별 신용등급 현황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는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부채비율을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겨 내년말까지 200%로 낮추도록 지시했다.

이처럼 김대통령이 관심을 쏟는 경제현안에 대해 각부처는 조정되지 않은 정책방향을 중구난방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

반면 김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은 현안은 수면 밑으로 잠수해 버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각부처는 지난달까지 요란하게 내놓았던 수출기업 금융지원 문제에 대해 이달들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임규진·박현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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