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 위기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의 축배를 앗아갔다. 온 나라가 외채상환 독촉장과 피를 말리는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김당선자가 잠잘 여유가 없는 건 당연하다. 총외채가 3천억달러인지 얼마인지조차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 분노하고 허탈해 하기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당선자가 청와대 입성도 하기 전에 이처럼 노심초사한 경우가 또 있었던가. 김당선자는 지난(至難)한 국가경영의 첫 시험대에 섰다.
▼아직 냉담한 국제금융계▼
외환위기는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다. 최근 몇달간 60억달러 안팎이던 단기외채 상환압력이 이달엔 1백억달러를 넘을 전망이다. 평소엔 해외 금융기관들이 거의 전액 만기를 연장해줬으나 지금은 연장비율이 20%도 안된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 빚 갚을 길이 암담하다. 그렇다고 지불불능을 선언하고 나자빠질 수는 없다. 결국 급전을 얻어 빨리 갚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외국 정부와 금융기관들의 태도는 냉담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한고비 넘기려나 했던 기대는 기대에 불과했다. 국제금융계는 IMF이행조건만으로는 한국에 돈을 빌려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다 금융 산업구조조정에 미적거리는 정부 태도는 그들을 더욱 실망시켰다. IMF와 월가(街)가 별개임을 깨닫는 데만도 많은 시간을 허송했다.
절박한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당선자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분명하다. 돈을 꾸어주고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확고하게 심어주는 일이다. 그렇지 못하면 외화차입 숨통은 결코 트이지 않는다. 국제금융계는 IMF보다 훨씬 강도 높은 경제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이상의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해야 한다.
기업의 재무구조와 채산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산업구조조정도 발등의 불이다. 연쇄부도와 실업이 우려된다고 경쟁력 없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면 해외금융기관의 협력은 어렵다. 파산과 인수합병(M&A)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부실기업과 금융산업에 대한 가차없는 수술에 나서야 한다.
외국인이 국내투자를 꺼리는 요인이 있다면 그 또한 과감하게 제거해야 함은 물론이다. 일부 금융기관과 공기업을 관심있는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조치까지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외자본에 대한 차별은 외국인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만큼 더 이상 존속시켜선 안된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임기가 두달이나 남았지만 어차피 국정의 무게중심은 김당선자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긴밀하게 협의해 새 경제팀을 서둘러 발족시키는 것이 옳다. 새 경제팀으로 하여금 개혁청사진을 만들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새 팀은 국제적 감각과 개혁의지 그리고 추진력을 갖춘 테크노크라트 중심으로 짜야 할 것이다. 새 정부 첫 경제팀의 컬러는 대내외의 신뢰와 직결된다.
김당선자는 위기의 실상을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리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국민 모두에게 고통을 요구하는 지도자의 용기가 요구된다. 비록 국민앞에 약속한 공약이라도 개혁과 위기극복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하게 포기하거나 유보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신뢰유도할 과감한 개혁을▼
지금은 누가 나라경제를 이 지경에 빠뜨렸는지 따질 겨를도 없다. 김당선자는 과감한 개혁프로그램을 들고 필사적으로 국제금융시장 설득작업에 나서야 한다. 직접 나서도 좋고 대리인을 내세워도 좋다. 월가로, 홍콩으로, 런던으로 달려가 그곳 금융계를 설득하고 신뢰를 회복해 이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은 없다. 지금 이 순간 김당선자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다.
권순직(본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