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대한유화공업은 지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여느 우량기업 못지않은 모습으로 변신했다.
95년부터 3년 연속 흑자. 흑자액은 무려 1천48억원. 매출도 연평균 5% 이상 신장,올해는 5천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법정관리중인 「부실기업」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그러나 이 회사 임직원들은 『꿈에도 떠올리기 싫은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며 긴장을 풀지 않는다.
72년 창립돼 플라스틱 비닐 필름 섬유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과 폴리에틸렌 등을 생산, 유화업계의 선두 자리를 지켰던 이 회사가 치명타를 입은 것은 90년 유화업종 자유화 이후 삼성 현대 등 8개 재벌그룹이 이 사업에 뛰어들어 공급과잉이 일어나면서부터.
그때는 또 온산공단에 짓기 시작한 나프타공장 때문에 차입금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대그룹들과의 가격경쟁과 차입금 부담을 견디지못해 결국 93년 누적적자 1천6백억원, 부채 7천5백억원으로 벼랑끝에 몰리자 법정관리를 신청, 이듬해 허가를 받았다.
한일은행리스 회장직을 맡고 있다가 이 회사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된 서갑석(徐甲錫·65)현사장은 『금융권의 간곡한 부탁으로 경영을 맡기는 했지만 한마디로 「막막함」 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며칠간 밤잠을 설치며 그가 내놓은 첫 카드는 불안과 좌절에 빠져있던 직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잠재력과 기술력이 있었기에 직원들이 용기만 잃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전직원을 모아놓고 「절대 감원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거꾸로 인원재배치와 신규인력 채용으로 영업과 기술개발팀을 대폭 늘리고 부동산매각과 소모성경비 절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 다음은 직원들의 몫이었다. 노조는 임금동결을 결의했으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공장 100% 가동이 실현됐다.결국 법정관리 이듬해인 95년 5백13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러나 흑자기조 정착을 위해서는 신제품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이 무엇보다 급했다. 각고 끝에 재벌그룹들을 제치고 강도가 세고 내열성이 좋은 고밀도폴리프로필렌과 터폴리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해외시장도 동남아에서 남미 유럽으로 넓혀갔다.서사장은 말한다. 『이 추세라면 법정관리 시한인 2004년보다 5년 이상 빨리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의 얼굴에 남아있는 법정관리의 그늘이 사라질 때까지는 절대 방심할 수 없습니다』
〈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