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환시장개입 배경-문제점]달러 가수요 봉쇄겨냥

  • 입력 1997년 10월 30일 19시 47분


썰렁한 환전창구
썰렁한 환전창구
30일 정부가 내놓은 「환율방어대책」은 실수요거래를 제외한 달러거래를 중단, 달러 가수요를 봉쇄하자는 뜻을 담았다. 그간 정부는 직간접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 원화환율방어에 안간힘을 쏟았지만 「백약이 무효」가 돼버리자 아예 달러를 사지 못하도록 극단조치를 취한 것이다. ▼재경원 조치 배경〓환율불안과 주가폭락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금융시장 전체를 공황국면으로 몰고가자 더 이상 체면만 차리고 있을 수 없는 시점에 왔다는 게 재정경제원의 판단. 재경원 관계자는 『시장주의고 뭐고를 따질 때가 아니다』며 달러매수세력과의 전면전(全面戰)을 선포했다. 한국은행과 시중은행, 대기업을 총동원하여 달러를 무제한 풀도록 유도하고 달러매입은 최소한으로 억제키로 한 것이다. 재경원은 한국은행 보유외환을 하루에 최고 20억달러까지 푸는 한편 시중은행과 대기업에는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주말까지 매일 하한가를 치도록 유도, 달러당 9백원선까지 내려보겠다는 게 재경원의 전략이다. 단순한 보유나 예금을 위한 달러매입은 아예 금지했다. 꼭 필요한 달러매입도 까다로운 절차를 붙여 웬만하면 달러매입을 못하도록 했다. 게다가 재경원은 규정을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할 수도 있다는 협박카드까지 제시했다. 예컨대 해외여행용으로 5천달러를 바꾼뒤 해외여행을 가지 않으면 형사처벌된다. ▼효과는 어느 정도〓재경원의 조치가 효력을 발휘할지에 대해선 회의론이 많다. 정부가 무역수지 흑자, 기초경제여건 호조 등을 내세우고 있지만 금융시장을 뒤엎은 불확실성과 불안심리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백일을 끌어온 기아사태가 겨우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지만 그간 누적된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고 홍콩 동남아 등 해외변수가 최악의 국면을 보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지난 3월부터 줄기차게 시장주의를 주창해온 강경식(姜慶植)부총리의 정책혼선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시장참여자들이 좀처럼 정부를 믿지 않게 되면서 정부가 각종 묘안을 쏟아내도 시장은 반응하지 않는 최악의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외환시장 반응〓정부대책에 대해 외환시장은 『정부가 시장의 분위기를 전혀 알지 못한다』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재경원의 대책은 「죽어가는 환자에게 영양제 주사를 투여하면서 일어나라고 하는 격」이라는 것. 30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개장 8분만에 이날의 상승제한치까지 올라 한동안 달러를 팔겠다는 주문이 자취를 감춘 것은 29일 재경원의 금융시장안정대책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라는 게 외환딜러들의 설명이다. 원―달러환율이 오전 11시 이후 하락한 것도 이날 재경원이 내놓은 후속대책과는 전혀 무관하며 한국은행이 달러화 물량을 시장에 대량 공급한 것이 유일한 원인이라고 외환딜러들은 분석했다. ▼환율전망〓한은이 이틀 동안 기업의 실수요에 대해서만 달러화를 제한적으로 공급하다 30일 갑작스레 대대적인 물량공급에 나선 배경에 대해 딜러들은 『10월말 외환보유고 집계에 대한 부담감이 해소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계 은행의 한 딜러는 『30일 한은이 시장에 개입한 물량은 주로 이틀 뒤 결제되는 「스폿」인데 이는 10월 외환보유고 집계에는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외환보유고 유지부담에서 자유롭게 된 한은이 며칠간은 원―달러환율을 9백65원선에 묶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음주 월요일까지만 이 수준을 유지할수 있다면 1천원이하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또 한번 달러배급사태가 빚어지면 외국인투자자금의 유출이 가속돼 환율상승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외환시장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미 실기(失機)해 한은의 개입에 관계 없이 환율상승은 계속될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유럽계 은행의 한 딜러는 『적잖은 대기업들이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천2백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대기업들이 이같은 기대로 수출대금 등으로 받은 달러화를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 실제로 환율이 그 수준까지 치솟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규진·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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