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채권단, 『「경영포기」없이 지원없다』

  • 입력 1997년 7월 31일 08시 33분


「구체적인 자구계획과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없이 기아에 대한 지원은 일절 없다」. 채권금융단이 30일 대표자회의를 연기하면서 보인 이같은 강경한 입장은 더이상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부도유예협약은 부도가 날 기업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골라 도와주겠다는 것이고 대상 기업은 자구노력으로 보답하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한 셈이다. ▼회의 분위기〓채권금융단은 이날 기아가 제시한 자구계획에 구체성이 없는데다 金善弘(김선홍)회장이 향후 자구노력에 대해 무성의하게 답변, 『도대체 기아를 정상화할 의지가 있느냐』며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주요 채권은행장들은 이날 회의에 앞서 여러 차례 사전 모임을 갖고 기아측이 구체적인 자구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은행장들은 이날 김회장이 기아그룹 정상화 계획을 설명하자 자구계획의 문제점을 추궁하듯 캐물었다. 한시간반 동안 질문공세를 펼치는 등 진로 대농그룹의 채권대표자회의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심지어 『김회장의 답변이 무성의하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기까지 했다. 은행장들은 이날 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기아그룹이 국민기업이라는 동정여론에 편승, 자구노력을 게을리하는 것 아니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상태. 김회장은 대표자회의가 산회되자 침통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보도진의 질문에는 함구로 일관, 경호원들에 둘러싸인 채 회의장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김회장 퇴진문제〓채권은행단은 경영권 포기각서 제출과 관련, 『자구노력 이행 수준의 각서가 아니라 금융단이 요청할 경우 무조건 퇴진할 수 있는 강도높은 각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 은행장은 『김회장이 제일은행측에 「자구노력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내용의 조건부 각서를 제출했으나 이런 수준의 각서로는 강력한 자구계획이 추진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李好根(이호근)제일은행이사는 이와 관련, 『채권단이 김회장의 경영권 포기각서를 요구한다고 해서 당장 김회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사전 담보조치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아가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데는 김회장의 경영능력에 문제가 있으며 김회장은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채권단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자구노력이 미흡할 경우 포기각서를 행사한다」는 전제를 달더라도 이는 사실상의 「김회장 퇴진」을 촉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않다는 시각이다. ▼아시아자동차 매각문제〓김회장은 『아시아자동차를 떼어낼 경우 기아그룹의 존립기반이 흔들린다』면서 기아그룹의 정상화를 위해 아시아자동차를 기아자동차에 흡수통합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아시아자동차 광주공장 부지 25만평 가운데 15만평을 매각, 기존 부채를 갚은 뒤 소하동으로 이전, 기아차에 흡수통합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권단의 생각은 이와 크게 다르다. 이날 한 은행장은 『아시아자동차의 부채비율이 워낙 높아 기아자동차에 흡수될 경우 오히려 짐이 돼 기아그룹의 정상화를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강운·천광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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