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활동상황]베일에 가린 「小山」

  • 입력 1997년 2월 25일 20시 13분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차남 賢哲(현철)씨는 그동안 어떤 사회활동을 해왔는가. 현철씨가 공식적으로 밝힌 대외활동은 유엔한국청년협회(UNYA)회장이 전부. 이밖의 활동은 베일에 가려져 왔다. 다만 몇몇 측근을 통해 약간씩 확인됐을 뿐이다. 현철씨가 공개적으로 정치무대에 나타난 것은 김대통령이 지난 87년12월의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직후부터. 88년1월 현철씨는 중대부중 동기인 朴泰重(박태중)심우대표이사 등 6명과 함께 정치여론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중앙조사연구소」를 만들면서 정치현장에 뛰어들었다. 여권(與圈)에서 현철씨가 「김소장」으로 불린 것도 이때부터다. 서울여의도 증권거래소 맞은편 대구은행 건물에 입주했던 이 연구소는 35평에 월세 60만원 정도였다고 당시의 관계자는 전한다. 이 연구소는 88년4월의 제13대 총선에서 과학적 여론조사기법을 본격활용, 평민당의 제1야당부상을 정확히 예측하면서 김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그후 盧泰愚(노태우)당시대통령의 중간평가문제 등에 대한 판단자료를 김대통령에게 제공했고 그해 강원 동해 보궐선거에도 관여했다. 90년 3당통합직후 이 연구소는 「민주사회연구소」(민사연·중학동 미진빌딩)로 확대개편, 사무실을 50평으로 키우고 상근직원도 10여명으로 늘렸다. 현철씨가 사실상 직접 관리한 「민사연」은 방송개발원장인 嚴涍鉉(엄효현)씨가 소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김대통령의 집권을 돕는 전략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92년 집권이후 「민사연」이 공식해체되자 그 멤버의 대부분은 청와대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나머지 요원은 현철씨의 「사조직」을 이끄는 핵심멤버로 활동해왔다. 그후 현철씨는 국회의원 출마 등을 통한 공개적 정치활동을 모색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4.11총선 이후에는 김대통령의 고향 경남 거제에서 현철씨의 보궐선거출마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따를 여권의 정치적 부담 때문에 그의 보선출마가 중도포기됐다고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작년말 비정치적인 UNYA의 회장에 취임해 공식적 대외활동을 시작하려 했다. 〈정연욱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