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울림과 빛의 대등한 만남, 그 틈에서 피어난 새로운 감각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7월 2일 04시 30분


서울 GS아트센터 ‘양인모X김치앤칩스’
바이올린 연주-미디어아트 이색 조화 선봬
“하나의 몰입된 흐름이 만드는 경험에 집중”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빛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와 어우러지는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빛을 활용한 미디어아트와 어우러지는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GS아트센터 제공
고요한 무대 위, 바이올린 한 대가 녹음된 연주와 일치하는 선율을 따라간다. 10개의 음으로 이뤄진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지만 지루하진 않다. 녹음된 소리와 실연의 속도가 조금씩 어긋나며 두 선율 사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그 틈에서 새로운 청각적 감각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 미니멀리즘 음악가 스티브 라이시의 ‘바이올린 페이즈’는 음악을 듣는 경험을 넘어 하나의 무대를 체험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무대 위 미디어아트는 또 하나의 주역이었다. 무대 전체를 감싸는 조명과 그 위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연기는 적막한 공간을 풍요롭게 했다. 때로 거칠고, 때로 연약하게 흐르는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연기는 빛을 통과했다. 바람처럼 흔들리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순간 강렬한 불꽃처럼 번졌다.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김치앤칩스 손미미, 김치앤칩스 엘리엇 우즈.
왼쪽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김치앤칩스 손미미, 김치앤칩스 엘리엇 우즈.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 ‘양인모X김치앤칩스’는 클래식과 미디어아트의 이색적인 조화를 보여준 무대였다. 양인모는 2015년 파가니니 콩쿠르, 2022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으로 주목받은 바이올리니스트. 이번 공연에서 그는 빛과 시공간을 활용한 작업을 선보여 온 미디어아트 듀오 ‘김치앤칩스’와 함께 소리와 빛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공감각적 무대를 구현했다.

약 90분간 이어진 무대에선 라이시의 ‘바이올린 페이즈’를 비롯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줄리아 울프의 ‘LAD’가 인터미션 없이 연주됐다. 고전부터 현대 미니멀리즘까지 방대한 시간을 아우르는 작품들이지만, 반복과 지속을 통해 관객을 깊은 몰입으로 이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양인모는 공연 전 가진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1부-인터미션-2부’의 공연 형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몰입된 흐름이 만들어 내는 경험 자체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에선 서정적인 연주와 빛의 조화가 한층 긴밀하게 느껴졌다. 단순해 보이는 화성이 변주를 거듭하며 서서히 확장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곡인 ‘LAD’에서는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졌다. 본래 아홉 대의 백파이프를 위해 작곡된 이 작품은 이번 공연에서 바이올린 편곡 버전으로 연주됐다. 묵직하고 긴박한 사이렌 같은 소리와 끝없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음향은 선율보다 소리의 질감과 운동성 자체에 집중하게 했다. 여기에 내면의 불안을 형상화한 듯한 시각 효과가 겹치며 긴장감이 더 커졌다.

이날 공연은 소리와 빛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었다. 두 감각이 대등하게 맞물리며 클래식 공연이 하나의 공감각적 경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미니멀리즘#미디어아트#양인모#김치앤칩스#클래식 공연#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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