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주가 상승률 3600%의 경이적인 성장. 2026년 6월 도요타를 제치고 일본 시총 1위 등극.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의 희망.
낸드플래시 전문 제조업체 키옥시아(KIOXIA)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일본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 키옥시아가 8년 전 도시바의 ‘버려진 자식’ 신세였던 걸 아시나요. 또 세계 최초로 낸드플래시를 발명하고도, 그 가치를 몰라보고 삼성전자에 기술을 넘겨준 과거는요? 두고두고 ‘반면교사’ 사례로 남을 도시바의 실패와 키옥시아의 비상 스토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낸드플래시(NAND Flash). D램과 달리 전원이 끊겨도 저장된 데이터가 지워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이죠. 낸드플래시가 있기에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가 대중화될 수 있었고요. AI 시대를 맞아 AI 데이터센터용 SSD(낸드플래시를 채택한 기억장치) 수요가 폭증하면서 한층 중요해졌는데요.
낸드플래시를 1987년 세계 최초로 발명한 원조가 바로 키옥시아입니다. 과거엔 일본 전통의 대기업 도시바에 속해있었죠.
도시바는 어떻게 낸드플래시라는 혁신을 탄생시켰을까요. 여기서 시대를 앞서나간 천재 엔지니어, 마쓰오카 후지오(舛岡富士雄, 1943년생)가 등장합니다.
키옥시아의 낸드플래시 제품. 키옥시아 제공‘성능은 좋은데 왜 안 팔릴까?’ 1971년 도시바 입사 뒤 D램을 개발해 온 마쓰오카 박사는 이런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는 영업부서로 자리를 옮겨 IBM·인텔 같은 고객사를 만났죠. 거기서 깨달은 건 고객은 성능이 좀 떨어져도 가격이 저렴한 걸 원한다는 것. 다시 연구부서로 돌아온 그는 1980년 ‘플래시 메모리’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D램처럼 데이터를 1비트씩 찔끔찔끔 지우는 게 아니라, 특정 구역(블록)을 통째로 지워버리는(마치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하고 터지듯이) 단순한 구조의 저렴한 메모리 반도체를 생각해 낸 거죠.
1984년 마쓰오카는 국제 학회에서 세계 최초 플래시 메모리인 노어 플래시(NOR Flash)를 발표했어요. 시큰둥했던 도시바 경영진과 달리 미국 기업은 즉시 그 잠재력을 간파했고요. 인텔은 곧장 도시바를 찾아와 샘플을 요구하고, 직원 300명을 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투입했죠.
뒤늦게 깜짝 놀란 도시바 경영진도 마쓰오카에게 팀원 10명을 배정해 줬는데요. 마쓰오카의 리더십은 상당히 독특했어요. 팀원들에게 개발 방침만 전달하고서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죠. 심지어 회의에도 잘 안 들어와서, 팀원들끼리 회의 시간에 자유롭게 논쟁하다가 아무 결론도 나지 않기 일쑤였고요. 마쓰오카가 밤에 집에서 혼자 연구한 뒤 낮엔 회사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낮잠 자는 날도 많았다는데요.
그래서 그 팀이 3년 뒤 내놓은 건? 세상을 바꿀 기술 ‘낸드플래시’의 탄생이었습니다. 2017년 방영된 NHK 다큐멘터리(브레이브:용감한 자들 제3탄 ‘강골 엔지니어’)에서 당시 팀원들은 마쓰오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어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기 위해 모두를 손발처럼 활용했어요.” “반드시 성공하기 위한 진용을 짜고 있었죠.” “관리를 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팀 편성을 능숙하게 처리했어요.” 팀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만든 것, 그게 최고의 관리 기술이었던 셈이죠.
2002년 미국 포브스지가 표지모델로 소개했던 마쓰오카 후지오 도호쿠대학 교수. 그를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라 칭했다. 세계적인 발명을 하고도 도시바 내에서 무시당한 그의 스토리를 기사로 소개했다.그럼, 이후 마쓰오카는 역사적인 발명 성과를 인정받아 도시바에서 승승장구했을까요. 아니, 정확히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1990년 도시바는 마쓰오카를 ‘기술감’으로 발령했어요. 연구소장 바로 아래 직책이니 명목상으로는 ‘승진’이지만, 실제론 부하도, 동료도 없는 이름뿐인 자리였죠. 새로 부임한 연구소장이 자기주장 강하고, 상사 말도 듣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만 하는 마쓰오카를 한직으로 밀어낸 겁니다. 마쓰오카는 “엔지니어에게 있어서 이건 죽음을 의미한다”면서 반발했지만 소용없었고요. 결국 그는 1994년 도시바를 떠나 도호쿠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쓰오카가 손발이 잘린 채 밀려나 있던 1992년. 도시바가 역대급 자책골을 기록했죠.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낸드플래시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 준 건데요. 삼성과 손잡고 인텔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겠다는 나름의 전략이었다고 하죠.
하지만 사실은 도시바 경영진이 낸드플래시 기술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거죠. 그들은 돈이 되는 D램 사업에만 매몰돼있었으니까요. 그 덕분에 삼성전자는 과감한 투자로 낸드플래시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됐고요. 결국 도시바를 제치고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섭니다. 도시바로선 최대 경쟁사를 스스로 키워낸 뼈아픈 실책이었죠.
마쓰오카 교수는 2004년 도시바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도시바가 자신이 출원한 플래시 메모리 특허로 거둔 이익(최소 200억 엔 이상) 중 10억 엔을 보상하라고 요구했죠.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일본에선 이례적인 소송이었는데요. 처음엔 마쓰오카의 발명이 별 가치가 없었다고 뭉개던 도시바는 결국 8700만 엔의 합의금 지급으로 소송을 마무리합니다. 마쓰오카 교수는 이후 인터뷰에서 “기술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소송을 제기했다며 이렇게 말했어요.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그저 (회사가) ‘고맙다’고만 말해주면 끝인데 말이죠.”
‘탈 도시바’가 신의 한 수
도시바는 2001년 말 한국 기업 공세에 밀려 D램 사업에서 철수한 뒤, 낸드플래시를 반도체 분야의 주력 사업으로 삼았고요. 2017년이 되자 도시바의 연결 영업이익의 약 90%를 낸드플래시가 차지할 정도가 됐습니다. 사실상 그룹 전체를 낸드플래시 사업이 지탱하는 상황이었죠. “낸드플래시로 HDD(하드디스크)를 대체하겠다”던 마쓰오카의 도시바 시절 비전이 현실이 됐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도시바는 2017년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결정했어요. 당시 도시바는 대규모 분식 회계 스캔들(2015년)과 미국 원전 사업 부실(2016년) 여파로 자본잠식에 빠졌고요. 상장 폐지를 피하고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돈 되는 건 뭐든 팔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죠. 인수전에서 대만 폭스콘과의 경합 끝에 새 주인으로 결정된 건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털이 주도하고 SK하이닉스도 참여한 ‘한미일 연합’. 약 2조 엔의 몸값에 팔려나간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는 2018년 6월 ‘키옥시아’로 새출발합니다.
세계 최대 낸드플래시 제조 공장인 키옥시아의 욧카이치 공장. 키옥시아 제공그리고 이 기업의 현재 시가총액은 무려 51조5300억엔. 8년 만에 기업 가치가 25배 넘게 뛰며, 일본 M&A 사상 보기 드문 역대급 성공 사례가 됐습니다. 얼마 전엔 토요타(43조1600억엔)를 제치고 일본 증시 시총 1위에 올랐을 정도죠.
아마 이걸 보며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할 거예요. ‘쯧쯧. 도시바가 제 복을 발로 찼구나. 그걸 그대로 갖고 있었으면 도시바가 시총 1위가 됐을 거 아니야?’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실제론 키옥시아가 지금 이렇게 잘 나가는 요인 중 하나로 ‘도시바와의 결별’을 꼽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죠. 즉, 도시바라는 대기업 체제에서 벗어난 게 키옥시아 성장엔 결정적인 플러스 요인이 됐다고 보는 겁니다. 만약 도시바가 그때 키옥시아를 팔지 않고, 그대로 낸드플래시 사업을 유지했다면? 지금처럼 빛 보긴 어려웠을 거란 분석이죠.
그럼 도시바에 대해선 왜이리 야박한 평가가 나올까요.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대기업 특유의 구조적 한계 탓인데요.
2005년 촬영된 도쿄 미나토구 도시바 본사 빌딩 앞 모습. 40층짜리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하마마쓰초 빌딩’이었다.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는 당시 “하마마쓰초(본사)는 발목만 잡는 존재”라며 불평하곤 했다. 이후 2010년대 경영 위기로 도시바는 이 건물을 매각하고 세 들어 지내다가, 2025년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의 스마트 커뮤니티 센터(15층)로 본사를 이전했다. 하마마쓰초 빌딩은 현재 재건축을 위해 철거 중이다. 동아일보DB과거 도시바는 가전제품, 의료기기, PC부터 인프라와 반도체까지 다 아우르는 방대한 복합기업이었고요. 그중에서도 도시바의 뿌리이자 중심이 되는 정체성은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 중전기(Heavy Electric) 부문이었죠. 중전기 출신이 이른바 ‘성골’이었고, 최고위 경영진에도 이들이 주로 포진했는데요.
문제는 중전기와 반도체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산업이란 거죠. 발전소는 30~40년 단위의 초장기 계획으로 움직이고, 항상 적정 마진이 보장되는 매우 안정적인 사업이에요. 이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이 널뛰듯 반복되는 역동적인 사업이죠. 특히 반도체는 ‘역발상 투자’가 중요합니다. 적자일 때 오히려 과감하게 투자에 나서야만, 훗날 호황기가 왔을 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법인데요.
중전기 출신 경영진은 이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죠. 적자인데 왜 투자를 해야 하지? 그들이 보기에 반도체 사업부는 그저 ‘돈 먹는 하마’와 같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시바 반도체 부문이 올리는 투자 요청은 삭감되거나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키옥시아 초대 사장이었던 고 나루케 야스오(成毛康雄) 박사는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장 시절 본사 39층 임원 회의실에서 이렇게 질책받았던 걸 회고한 적 있어요. “이게 500억 엔 투자 승인 안건 보고서의 두께란 말인가!” 투자 승인을 받고 싶으면 더 두꺼운 보고서를 내놓으라면서, 경영진은 그의 보고서를 읽지도 않고 돌려보냈죠. 그는 도시바에서 중전기 출신 경영진을 설득하는 일이 “반도체 기술 혁신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말했어요. 이렇게 의사결정 지연으로 번번이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서 도시바 메모리 사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졌죠.
키옥시아의 2025년 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분기 실적과 연간 실적 그래프. 매출액이 최근 들어 급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키옥시아 제공그리고 2018년 도시바로부터 독립한 키옥시아. 이제 의사결정 속도는 도시바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빨라졌습니다. 누구의 간섭 없이 반도체 산업의 생리에 맞게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요. 오타 히로오 현 사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번 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스스로 판단해서 즉시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이 도시바로부터 독립해서 얻은 가장 큰 이점이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실제 메모리 가격 폭락으로 사상 최대 적자(2400억 엔)를 기록했던 2023년에도 키옥시아는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줄이지 않았어요. 파산 위기설이 돌 정도로 심각했는데도 말이죠. 이에 대해 키옥시아 대주주인 베인캐피탈의 스기모토 유지 일본 대표는 “반도체 산업이 중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성공할 거라 확신했다”면서 위기 상황에도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을 절대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합니다. 그렇게 초고속 SSD 기술에 대한 투자를 끈질기게 밀어붙였던 게 이제 와서 AI 데이터센터용 SSD 시장의 수요 폭발로 돌아오고 있는 거죠.
결국 마쓰오카 박사의 낸드플래시 발명 스토리나 독립한 키옥시아의 비상이 주는 교훈은 간단합니다. 아무리 기술과 인재가 일류여도 경영이 따라주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는 거죠. 오늘날 기업들이 도시바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이유입니다. By.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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