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과 해양유리 액자에 담은 ‘삽시도, 수많은 날 들 중 하루’[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7일 16시 57분


충남 보령 삽시도의 바다는 풍경만 남기지 않는다. 노을이 물드는 저녁이면 갈매기가 낮게 날고, 물빛은 시시각각 표정을 바꾼다. 그러나 파도가 물러간 자리에는 유목(流木)과 조개껍데기, 밧줄, 튜브 조각, 스티로폼, 바다유리 같은 해양쓰레기도 함께 남는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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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시도에서 활동하는 김태연 작가는 바다가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바다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바다가 떠안고 있는 상처를 따로 떼어놓지 않고, 하나의 작품 안에 함께 담아내는 방식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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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삽시도의 노을과 방파제에 앉아 있는 갈매기,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결을 사진에 담고, 해안가에 밀려온 해양쓰레기를 주워 그 사진을 감싸는 액자로 다시 세운다.
그가 26~29일 충남 보령문화회관에서 개최하는 사진전 ‘삽시도, 수많은 날들 중 하루’는 그래서 단순한 풍경사진전이 아니다. 사진 속에는 삽시도의 바다가 담기고, 사진 바깥의 프레임에는 그 바다가 밀어 올린 흔적이 얹힌다.
김 작가는 “처음에는 해변에 밀려온 것들을 그냥 치워야 할 대상으로만 봤다”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걸 다른 방식으로 보여줄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바다가 버린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을 다시 바다 사진의 액자로 쓰면, 풍경을 보는 방식도 달라질 것 같았다는 설명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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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사진과 액자가 분리되지 않는다.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 사진에는 물결에 닳은 유목이 어울리고, 푸른 바다빛이 살아 있는 작품에는 바다유리와 조개껍데기가 자연스럽게 배치된다. 튜브나 스티로폼 조각, 낡은 밧줄과 그물도 손질을 거쳐 새로운 프레임이 된다. 공장에서 찍어낸 틀 대신, 삽시도가 직접 떠밀어 올린 재료가 사진의 경계를 만든 셈이다.
그 중에서도 눈길이 가는 것은 바다유리(See Glass)다. 수십년 전 해안가에 무심코 버린 소주병, 사이다병, 맥주병 등이 깨져 생긴 유리 조각이 파도에 휩쓸리며 만들어지는 보석이다.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파도에 마모돼 둥글둥글하게 크리스털 같은 보석으로 재탄생한다.
김 작가는 삽시도에 찾아온 관광객들과 함께 바다에서 해양유리를 줍고, 액자와 키링으로 만드는 일을 해왔다. 기자도 언젠가 경주 감포 앞바다의 자갈과 바위 틈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해양유리 조각을 주워와 집 안의 꽃병에 장식한 적이 있었다.
김 작가는 “삽시도의 바다를 더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진은 삽시도의 얼굴이고, 액자는 삽시도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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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직접적으로 환경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먼저 ‘예쁘다’고 느끼고, 나중에 그것이 바다에서 주운 쓰레기로 만든 액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예쁜 액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해양쓰레기였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바다를 보는 마음이 달라지게 되지요.”
사진전의 제목에도 이런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삽시도, 수많은 날들 중 하루’는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풍경을 강조하기보다, 매일 반복되지만 결코 똑같지 않은 섬의 시간을 붙잡겠다는 뜻에 가깝다. 삽시도의 바다는 같은 자리에서도 아침과 저녁이 다르고, 물이 들어올 때와 빠질 때가 다르며,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드러낸다.김 작가는 “삽시도는 시간이 잘 보이는 섬”이라며 “그 변화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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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작업은 전시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김 작가는 삽시도에서 버디하우스 펜션을 운영하며 워케이션 관광객들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섬을 찾은 이들은 바다를 보고 쉬러 왔다가, 해안가를 함께 걸으며 해양쓰레기를 줍고, 그것으로 키링이나 소품, 액자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김 작가는 5년 전부터 이 섬에 머물며 언니의 식당 일을 돕고, 자신이 운영하는 버디하우스 펜션을 꾸려왔다. 언니가 오랫동안 삽시도에서 식당을 운영해온 만큼, 김 작가 역시 섬의 생활과 관광, 바다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체감하게 됐다. 그는 “언니가 여기 시집온 지가 한 40년 넘었다”며 “식당하고 펜션을 하니까 너무 힘드니까 제가 들어와 돕게 됐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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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운영하는 버디하우스 펜션 역시 단순한 숙소라기보다 삽시도의 감각을 담아낸 공간에 가깝다. 조개껍데기와 유목, 바다에서 건져 올린 폐품을 활용해 꾸민 파란색 펜션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연장된 전시처럼 보인다. 전시장에 걸린 액자가 바다의 흔적을 품고 있다면, 버디하우스는 바다의 흔적을 생활 속 공간으로 옮겨놓은 장소다. 삽시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해양쓰레기를 손으로 만지고, 그것이 예술과 생활의 재료로 바뀌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경험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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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사진을 보고, 액자를 보고, 다시 사진을 보는 사이에 바다가 조금 다르게 읽혔으면 좋겠다”며 “그냥 예쁜 풍경이 아니라, 지켜야 할 풍경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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