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심리학/필립 G. 짐바도, 로버트 L. 존슨 지음·배동근 옮김/572쪽·4만 원·아르테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는 과거 어떤 극작가보다 등장인물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활짝 열어젖힌 작가였다. 바로 ‘독백’을 통해서였다. 왕을 살해할지 아니면 스스로 생을 마감할지.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햄릿의 독백이 대표적인 경우다.
셰익스피어의 창은 후대 심리학자들이 그의 텍스트를 ‘해석 잔치’에 자주 가져다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셀로’에선 오셀로가 확증편향과 질투에 눈멀어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맥베스’에선 맥베스가 매몰비용 오류의 덫에 갇혀 파멸한다. 후대 심리학자들이 동일한 개념을 재발견하기 400년도 전에 이를 예감한 셈이다.
신간은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설계자로 유명한 필립 짐바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가 로버트 존슨 교수와 공저한 책이다. 셰익스피어를 ‘원조 심리학자’로 다시 읽어 보자고 제안한다.
1971년 짐바도 교수는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건물 지하에 모의 교도소를 꾸미고 남성 지원자 24명을 무작위로 두 집단, 죄수와 간수로 나눴다. 이들은 곧 자기 역할에 깊이 몰두했다. 일부 간수들은 권위적으로 행동했고, 가혹 행위까지 했다. 실험은 일주일 만에 갑작스럽게 종료됐다.
놀랍게도 셰익스피어가 1604년 발표한 희극 ‘잣대엔 잣대로’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빈센티오 공작은 이인자 앤절로에게 통치를 맡기는 일종의 ‘유사 실험’에 착수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앤절로는 곧 전횡을 저지르며 젊은 신사 클라우디오를 감옥에 가둔다. 짐바도 교수는 실험 당시엔 ‘잣대엔 잣대로’를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빈센티오 공작과 매우 유사한 역할을 맡은 셈이 됐다.
짐바도 교수는 이후 감옥 실험을 낱낱이 분석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루시퍼 이펙트’를 펴냈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의지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 개인의 성격 특성보다 상황과 사회적 맥락이란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와 짐바도 교수가 인간성을 암울하게만 봤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기 때문이다. ‘잣대엔 잣대로’에서 신하 에스칼러스는 아랫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앤절로 앞에서 그의 처벌이 과도하다는 점을 직언한다. 짐바도 교수의 대학원생 제자였던 크리스티나 매슬러크 역시 실험이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대학원생으로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했다.
짐바도 교수는 매슬러크 덕분에 자신이 실험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간수가 죄수를 학대하고 있다는 걸 미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실험을 중단했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영웅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러한 행위의 상당수가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는다. 짐바도 교수는 이를 ‘영웅적 행위의 평범성’이라고 불렀다.
셰익스피어를 심리학의 용어로 다시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햄릿, 리어왕, 맥베스 부인, 리처드 3세…. 이들은 의식했든 못 했든 우울증, 조증, 인지저하증, 강박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히스테리와 맞닥뜨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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